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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Sep 03. 2018

습관


 습관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 누리기

     


아마도 나는 너무나도 멀리서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나 봅니다.

행복은 마치 안경과 같습니다. 나는 안경을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안경은 나의 코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도 가까이! - 쿠르트 호크 -

     

행복은 습관의 결과로 형성되는 영혼의 탁월한 울림이다. 좋은 습관은 중용, 용기, 즐거움과 고통의 극복,  온화함 등에서 출발한다. 습관은  합리적 선택과 효율적 문제해결에 커다란 차이가 나게 하는 덕목이다.

채근담은 “나무는 뿌리로 돌아간 뒤에라야 꽃과 가지와 잎의 헛된 영화를 알게 되고 사람은 관 뚜껑을 닫은 후에야 자손과 재물이 쓸데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지금 행복을 느끼라고 교훈한다.

우리는 늘 보는 가족들의 얼굴에서  늙어가는 변화를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오랜만에 본  선생님의 얼굴을 볼 때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우리의 감각은 매일 조금씩 느껴지는 것은 알지 못하며,  주변의 여건에 따라 느끼는 강도도 달라진다. 학교 입학할 때에 모든  학생들 수준이 비슷하다. 하지만 졸업 후 몇 년이 지나면 능력의 격차가 벌어진다.

    

 


“이슬비에 옷 젖는다.”는 사소한 습관이 운명을 지배한다.


습관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일이든지 하게 만든다. - 도스트예프스키 - 

젊음의 잘못된 습관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바로 "시간" 이다. - 그라시안 - 

우유부단한 것만이 습관화되어 있는 사람보다 더 비참한 사람은 없다. - 제임스 - 

생활은 습관이 짜낸 천에 불과하다. - 아미엘 -


인생에 있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하거나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고통을 자초하는 일이다.  

남의 기준에 맞추어 내 인생의 기준이 정해진다면 불행이 예정된 것이다.

남의 기준이란 늘 변하고 다양하여 그 실체 파악이 안 된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 역시 모호하고 무책임하여 의미가 없다.

     


행복을 위한 변하지 않는 좋은 습관을 제시한다.


-만나는 사람 오늘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따뜻하게 대하라.

-살면서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과 말을 중시하라.

-가치 있는 삶이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자신감이다.

-현명한 삶이란 순리를 거부하며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몸을 내 맡기고 자연스럽게 따라 흐르는 삶이다.

- 존경과 신뢰 우정의 삶이 중요하다. 인생 여정이 아무리 힘들고 버겁다 해도, 끝은 있는 법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인생에서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고 없고 다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위험은 전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익숙한 것이 편하다고 해서 마   냥 그것에 머물게 되면, 노예의 쇠사슬이 될 수 있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희망도 있다.

-늦게라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낮다.

-친절이란 지혜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어떻게 되겠지’라는 자포자기식이거나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왜 남을 신경 써야 하는지’등의 불평은 옳지 못하다. 



인간은 어울려 사는 것이고  백번 고민하는 것 보단 한 번의 좋은 습관을 물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나의 마음을 성찰하고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지만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이 멋진 삶이다. 행복의 지름길이다.

     

비교는 고통을 자초하는 일

     



☞선거 때 찍은 후보 지금도 지지하세요?  베버의 법칙 [Weber's law, -法則]


늘 보던 가족들의 얼굴에서는 매일 늙어가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몇 년 지난 후에 ‘늙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처음 자극과 다음에 주어지는 자극의 세기 차이가 일정한 비율이 되어야만 자극을 느낀다는 이론, 

19세기 독일 생리학자 에른스트 베버가 역도에 관한 연구를 통해 앎. 


100킬로그램을 들어 올린 역도선수에게 100그램의 무게를 더 올려도 상관없다. 

그런데 100그램씩 몇 차례 늘리다보면 어느 순간 무거워서 들지 못한다.

 60g과 61g의 차를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60g과 62g의 차이라면 겨우 구별할 수 있다. 

이렇게 감각으로 구별할 수 있는 한계는 물리적 양의 차가 아니고 그 비율관계에 의하여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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