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닌 삶을 배격하라
삶의 본질을 알고 싶어서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왔습니다.
_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머지않아 인공지능은 우리의 수고를 대신하여 삶을 기획하고 노동을 대신할 것이다.
신의 영역인 불로장생의 비밀이 밝혀져 죽지 않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소한 변화는 익숙함과의 결별, 거인의 어깨위에 매달리고, 새로움이 주는 두려움, 인간 가치의 상실, 모든 정보의 노출 등으로 정보의 쓰나미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물질과 문명의 피로로 인해 자신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삶을 쫓아가는 노예의 삶을 살지도 모릅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지 않는 이상한 존재가 오늘 소개할 소로우입니다.
돈과 성공이 사람들의 최대목표가 되고 물질적 풍요가 유혹하는 시대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사람입니다.
남들은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 더 많은 소비를 얻기 위해 과잉 노동과, 남을 속이고 짓밟는 일이 예사로운데 반해 자발적 빈곤과 영혼의 자유를 선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데이비드 소로는
1845년 7월 4일부터 1847년 9월 6일까지 2년 2개월간 콩고드 지방의 자연속에서 자급자족의 실천하면서 “월든”책을 썼다.
그는 생태주의의 복음서와 같은 책을 낸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재산의 노예 일의 노예로 사는 것을 배격하고 그렇게 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한다.
숲에서 최소한의 노동으로 자금자족하면서 자기 성찰과 여가에 충실한 삶을 실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행진할 때 다른 사람과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그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자신만의 참다운 삶을 구한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동화되는 삶을 사는 데 충실하여 스스로를 ‘자연의 관찰자’라고 말했다. 소로우는 “부질없는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돈의 노예가 되는 삶”을 부정하고
“계절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계절의 음료를 마시고, 계절의 과일을 맛보고, 각 계절에 자신을 순순히 내맡겨라. 계절을 당신의 유일한 음식, 음료, 약초로 삼으라.”는 자연에 의존하는 청빈과 간소한 삶을 훨씬 가치 있게 느낀 것이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재물이나 성공 지위 등이 아닌 자연이었다.
귀뚜라미의 지저귐도, 새벽의 수탉소리, 버드나무에 깃든 개똥지빠귀의 소리도,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등 자연과 교감하고 문명의 짐을 벗어던지고 대지에 굳게 발을 딛는 것으로 자유와 만족을 느낀 것이다.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많은 사람들이 대개 선택하는 목사나 의사, 법률가 대신 자연에 흠뻑 빠져 많은 시간을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을 뿐이다.
돈이 필요해지면 배를 만들거나 이웃의 토지를 측량하는 등의 일을 하여 생계를 꾸려갔다.
가난했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1년에 한 달 일하고 나머지는 아껴서 쓰는 야생에서의 삶을 지향한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문제를 등한시하지는 않았다.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人頭稅)의 납부를 거절한 죄로 투옥당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소로우에게 홀로 숲에서 사는 이유를 물었을 때 소로우의 답은 간결했다.
“내가 숲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오직 삶의 본질만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죽기 직전에 내가 실은 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삶은 너무나 소중해서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며 낭비하길 원치 않았다…나는 강인하고 엄격하게 삶의 정수를 모조리 살아내고자 했다. 가장 근원적인 삶의 형태로 돌아가 삶이 아닌 곁가지들을 쳐내고자 했다.”
인간이기에 후회 없는 삶을 없앨 수는 없다.
단지 내가 자연의 소리에 발맞춰 미래의 소리를 들으면 된다.
세상이 변하길 바라기 보다는 자신이 먼저 변해야 제대로 살 수 있다.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든 새것을 얻겠다고 그렇게 안달복달하지 마라. 헌옷이 되면 뒤집어 자시 깁고 오랜 친구들에게 돌아가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마지막으로 소로우는 자신만의 속도를 가지라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