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는 역사
중동의 역사는 공간적으로는 이란. 이라크와 이집트로 나눈다.
BC6세기 이후에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영국 등의 같은 지배 세력 아래 있었고
이슬람교가 등장한 이후 종교적입장도 동일하다.
지리적으로는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은 지리적으로 중동과 아프리카로 나뉜다.
크게 중동 역사를 나누면 페르시아 이전과 페르시아 왕조 아랍왕조 투르크 왕조 투르크왕조 등으로 구분된다.
고대 중동문화는 기원전 3500년경 이라크 저지에서 처음 출현했다.
기원전 2400년경에는 몇몇 도시국가가 결합된 지역 제국의 형태로 더 큰 정치적 실체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으며, 수세기 동안 농업, 군사기술과 운송수단의 발달로 더욱 광범위한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고대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제국은 아시리아 제국(성서에서는 앗수르, BC 1200~612)이었으나 과도한 팽창으로 인한 신민(臣民)들의 저항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이후 고대 중동에서는 BC 550~331년경에 조로아스터교 집단인 페르시아인들이 이란의 남부 파르스에서 아케메니드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제국은 그리스의 아나톨리아부터 이집트의 옥서스강까지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대제국이었다.
기원전 악티움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하면서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조로아스터교(배화교)를 믿는 이란 민족이 파르티아왕국을 대신해 새로운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를 세웠다.
6세기 말부터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동서무역이 아라비아의 서해안을 통과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국제무역의 중심지에서 이슬람이 잉태되기 시작하였다.
7세기에 접어들어 아라비아 반도에 거주하던 사라센부족은 통일되지 못하고 분열 상태로 부족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티움 제국이 이들을 끌어들여 대항했기 때문에 부족 간 분열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무함마드(مُحَمَّد, Muhammad, 570?~632)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종교의 제자가 되어 이슬람세계를 공동체(‘움마’)로 통일시켰다.
이로써 이슬람 제국의 토대가 만들어졌으며, 그들이 만든 종교는 이제 15억 세계인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었다. 632년 무함마드가 영면하면서 예언자의 소명은 끝나고 대리인인 할리파(칼리프)의 시대가 도래하여 이슬람 제국을 지배하였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중세 페르시아 왕조의 하나로, A.D. 226년에 아르다시르 1세(Ardashir I, 226-241 재위)가 파르티아(Parthia) 왕국을 점령한 뒤 건설하였다. 사산왕조는 A.D. 651년에 아랍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였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세운 아르다시르 1세는 오늘날 이란 남서부 파르스(Fars) 지방에 있던 이스타크르(Istakh, 고대의 페르세폴리스)의 조로아스터교 제사장인 사산(Sāsān)의 손자이자, 이 파르스 지방의 실권자였던 파파크(Papag 혹은 Papak)의 아들이다. 왕조의 명칭은 아르다시르 1세의 조부(祖父)의 이름인 사산(Sāsān)에서 유래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으로 13년간 이 지역을 지배한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세 아들에게 분열되었다.
이집트의 프로테마이오스왕조,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누스 왕조였다. 다리우스 1세 때 지금의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다.
파르티아왕조는 로마와의 전쟁으로 인한 소모로 인해 사산왕조에 의해 멸망된다.
무함마드가 죽은 뒤,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 알리 등 4명의 장로들이
교도(敎徒)의 총의에 의하여 잇따라 칼리프(후계자)로서 이슬람 교단을 통솔하던 시대를 말한다.
알리가 쿠파로 옮길 때까지 모두 메디나에 있었으며, 초대는 전에 이반(離反)하였던
아라비아 제부족을 재통일하였다.
제2대는 시리아 ·이라크 ·이집트 등을 정복하고 통치의 대 방침을 정하였으며, 제3대는 코란의 통일을 기하였다.
그러나 제4대 알리는 우마이야가(家)와 대립 끝에 암살되고, 결국 무아위야에 의한 세습왕조 시대로 옮겨 갔다. 4대 칼리프인 알 리가 암살당한 이후 알리분파에서는 칼리프는 마호메트와 혈연이 닿는 가문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아파와 그렇지 않은 수니파로 나뉜다.
661년 무아위야(معاوية بن أبي سفيان, Mu‘āwiy‘āh, 661~680년)이 할리파에 즉위하면서
라시둔 할리파 시대는 끝나고 우마이야 왕조(Umayyah Dynasty, 661~750) 시대가 개막되었다.
우마이야 왕조는 아랍 왕조, (백의)대식국으로 불린다.
우마이야 왕조는 부도덕성과 생활상이 신민들에게 반감을 주면서 반란이 도처에서 일어났으며, 아부 알 압바스(Abūl' Abbas)에 의해 건설된 압바시야 왕조는 이슬람 왕조로 (흑의)대식국으로 불리운다.
세속적이며 물질적 성향이 강했던 우마이야 왕조의 팽창 중심적 경향은
압바시야 왕조에서 엄격하고 경건한 종교적 중심의 정책으로 재구축되었다.
7세기 무함마드가 종교적 통일을 달성하고 이슬람 정치공동체를 수립한 이후 중동에 통일적 정치공동체를 이루려는 꿈을 현실화 시킨 사람들이 소아시아 변방의 투르크인들이었다.
투르크인들의 소공국인 오스만은 1300년에서 1683년까지 아라비아 반도부터 남방의 나일강 상류, 동방의 이란고원, 흑해, 에게해(─海, aegean sea)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유럽인들에게 이상적 품성을 갖춘 모범적 국가로 인식되고 유럽의 운명과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슬람제국은 급속한 성장에 못지않게 급속히 분열했다.
특히 후계자 문제는 역사가 오랜 아랍세계 내부의 알력과 함께 불완전한 제국을
대립과 분열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투르크 패권시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는 프랑스에 의한 중동 분열이 시작되고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아랍제국의 독립과 1948년 이후 이스라엘 독립과 석유를 둘러싼
미국과 소련 간의 패권 다툼이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은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질서에서 미국과 소련의 냉전적 지배 질서로 전환,
민족주의와 원리주의의 발흥, 이스라엘 건국에 따른 문제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종파 갈등 등 복잡한 역사가 전개된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통해 신정국가로 회귀하자 혁명의 파급을 차단하기 위하여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을 침공(1979~1989)하고 이러한 소련의 군사점령 실패는
1991년 ‘소련 연방 붕괴’라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이란이 다른 중동국가로 혁명이 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라크 지원에 나선다.
그러나 8년 후에 정전으로 끝난다.
이후 이라크는 전쟁으로 인한 재정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쿠웨이트를 침공한다(1991) 그러자 페르시아 만안에 석유이권을 가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 42일간의 걸프전이다.
미국의 문화충돌에 불만을 품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킨다.
미국은 응징으로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들어가고 한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되고 탈레반 정권을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