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사기에서 벗어나라
누구나 늙어가면서 병들어 고통가운데 언젠가는 죽는다.
이런 분명한 사실을 알면서도 정작 잘 죽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은 적다.
죽음이 끝이라는 생각을 하거나 혹은 현재 살기도 어려운데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지적 사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죽음이 끝이 아닐 수도 있고 잘 죽는 것의 목표는 잘 살기 위한 방편이다.
멋진 죽음이야말로 좋은 사람을 만들며 인생의 의미와 목적의 꽃을 피게 한다.
존재의 무상함과 형이상학적인 죽음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시간을 아껴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오늘의 할 일이다.
부처는 인생은 짧고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촌음을 아껴 수행하라고 한다.
2500년 전 히말라야 카필라 왕국(현재 네팔)에 손이 귀한 왕자가 태어났다.
생후 7일 만에 어머니를 잃은 아들을 위해 왕은 아들에게 슬픔과 어떠한 고통도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궁전의 벽을 높게 쌓아 외부와 절연시키고 오직 젊음의 기쁨과 안락함만을 아들에게 주었다.
하지만 왕자도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인간의 모습이 궁금하여 어느 날 궁 밖으로 나와 밭갈이하는 농부를 보고 인간들이 수고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인간 사회의 고통을 깨달았다.
그리고 새에게 잡아먹히는 벌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쇠약한 노인을 보고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태어나서 병들어 신음하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운명에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가 윤회하는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하고 29세 때 출가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다.
붓다는 죽음을 앞두고 유언의 가르침을 말한다.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
40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삶이 얼굴에 묻어나오기에 멋있게 늙는 것이 어렵다. 나이 듦이 현명함을 상징했던 시대를 지나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간섭하는 ‘꼰대’의 이미지가 더 강해지는 시대, 현명한 어른이 되는 것이 어렵다.
베스트셀러 ‘미움 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노년의 가치를 말한다.
“비로소 경쟁서 해방되는 시기 과거·미래에 집착하지 말고 오늘 하루만을 위해 살아보는 용기를 가져라”
그는 나이 듦을 인정하고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어 보라고 말한다.
세월이 지나고 할 수 없는 것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불안감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의 가치는 살아있는 자체가 귀하다. 앞으로의 일만을 걱정하면 지금을 소홀히 하게 되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면 내일의 과제는 내일 생각하면 된다.
하루의 걱정은 하루이면 족하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닌 외로움이다. 배고파서 죽는 것보다 외로워서 죽는 숫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인생의 전반전에는 학력, 지위, 재력 등으로 성공의 승패가 갈라진다.
후반전은 성공의 조건은 사라지고 건강 혈압 심장 당뇨 등의 성인병에 시달려 의사에게 구걸해야 하는 기간이다.
전반전에 높이 쌓았던 것들이 후반전, 연장전에선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면 후회 막급할 뿐이다.
운동경기에서도 전반전 끝나면 쉬는 시간이 있다.
승부에만 집착하고 정신없이 살아온 시절을 전반전이라 하면 먹고 사는 일을 마치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한 노력이 후반전일 것이다.
바로 건강한 몸이다.
건강할 때 있는 돈은 자산이지만 아픈 뒤에 쥐고 있는 돈은 시기와 탐욕의 유산일 뿐이다.
내 대신 차를 몰아주거나 나를 기쁘게 할 사람은 많으나 아플 때 나를 대신해 줄 스 있는 사람은 없다.
병원특실에 누워 있는 것보다 허름한 밥집에서 싸구려 김치찌개를 먹는 것이 훨씬 낳다.
굽어지기 쉬운 쑥대도 삼밭 속에서 자라면 저절로 곧아진다는 뜻이다.
꾸불꾸불 자라는 쑥도 삼밭 속에서 자라게 되면 삼의 영향을 받아 곧게 자라게 된다.
좋은 벗들과 사귀면 좋은 사람이 된다.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친구들과 교분 관계를 맺으면 거기에 동화되어서 올곧게 된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