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가 익숙해질 때... 염색이 답이 된다면
오늘도 아내는 염색 좀 하고 다니라고 잔소리한다. 젊게 보이라는 요청일 텐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젊어져 다른 여자가 만나자고 해도 좋겠어?”라는 역정에도 아내는 무반응이다.
길가는 여자를 쳐다본다고 핀잔주던 아내가 변한 것인가?
아니면 세월이 많이 흐른 까닭인가?
나는 작은 일에도 가슴이 벌렁거리지만, 아내는 갈수록 대범해진다.
내가 거울을 봐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깊이 파인 팔자주름에 흰 눈썹, 충혈 된 눈과 거무튀튀한 한 피부,
이게 진정 나의 얼굴인가?
염색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솔직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
지난해 염색이 잘못되어 1년 내내 피부병으로 고생했던 트라우마 때문이다.
성경 속 가혹한 시련의 주인공 욥의 피부병 생각이 났다.
의인인 욥의 고난에 비할 바 못되지만, 피부병을 주제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실제로 온 몸과 자존심에 깊은 상처가 났다.
요즘 강의나 비즈니스로 만날 기회가 줄어든 마당에 염색해야 할 이유가 무언가?
이 때 삶이 내게 질문하고 답을 구한다.
“너는 지금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니?”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방황하며, 무엇을 찾을지 고민 하니?”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을 신뢰할 나이.
자신의 소망보다도 자식의 꿈을 걱정하게 된 나이
잡아야 할 것보다 놓아야 할 것을 깨닫게 하는 나이
나이를 더해서 계산하기보다 빼기가 쉬운 나이이다.
냉커피를 먹고 싶어도 뜨거운 것을 마셔야 하는 나이
겉으로 많은 것을 가졌어도 가슴이 텅 비어있는 나이
말하기보다 경청과 남 칭찬을 많이 해야 하는 나이.
아침에 일어나 찌뿌드드한 날이 많은 것을 나만 몰랐다.
한갓 사소한 염색으로 인해 마음이 들썩여서야?
알던 사람이 한둘씩 잊혀 가는 나이가 되고서야 철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일희일비를 떠나 중심을 잡자.
삶이란 나이가 아닌 사랑으로 익어가는 것,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지.
지금 마주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면,
마음 염색부터 하고, 주말에는 흰머리 염색을 해야겠다.
_ 김진혁의 <쏠쏠TV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