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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Nov 02. 2020

돈의 철학

당신만 모르는 7가지 오해

돈의 철학: 당신만 모르는 7가지 오해    


“돈은 무차별적이고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자 원인이다. 그러나 돈은 또한 오로지 개인의 가장 고유한 영역 내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 가장 내면적인 것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기도 한다.”_ 게오르크 지멜     

독일의 생명 철학자 지멜은 최초로 돈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면서 다음과 같이 돈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첫째, 돈은 양적인 가치 추구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질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즉 사람은 돈을 소유하기 전에는 양적인 문제에 집착하지만 일단 돈을 소유한 다음에는 삶의 양식과 문화에 집착한다. 

예를 들면 아침에 나에게 신문을 배달해주는 사람을 인품 때문에 만난 것은 아니다. 화폐의 교환기능 때문에 만났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간관계로 유지된다. 


둘째,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행위가 기계적인 육체 행위가 아닌 영혼 행위. 돈이 천박한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을 개탄, 돈이 우리 삶의 질을 고양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

셋째, 돈의 본질은 경제학적으로는 상품의 가치를 매기고, 교환과 거래를 매개하며 자산의 축적 수단이다. 돈은 악마도 천사도 아닌 가치 중립적인 물건이다.

 

   


1. 돈은 무엇인가?  


구두쇠 스쿠르지 영감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쓴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작품 중에 ‘돔비 부자’라는 책이 있다. 사업으로 큰돈을 번 돔비가 그의 외동아들인 폴에게 사업을 물려주려고 한다. 이 때 아들이 묻는다. “아빠 돈이 뭐에요?”이라는 질문에 아빠는‘금화, 은화, 동전, 환율’ 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들은‘그건 나도 알아요, 그래서 돈이 뭔데요?’라고 묻자 아빠를 꿀 벙어리가 된다. 돈 버는 것은 도사이지만 돈의 본질을 아는 지식은 초보였다. 경제학의 아버지는 애덤 스미스는 돈에 대해 ‘상업의 보편적 도구’ 라고 말하며 교환의 매개체이자, 가치저장의 수단이며, 가치 척도의 도구라고 했다. 


돈은 무엇인지 동양과 서양의 생각을 차이를 살펴본다. 

서양 주류 경제학에서는 돈은 계산의 기본단위, 교환의 매개물, 지급수단이다. 돈이란 것은 거래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개인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며 그 가치도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견해다. 

이에 반해 동양에서는 돈은 국가가 정해서 유통을 명령하는 대상물이라고 본다. 

고대 중국과 조선 시대에는 국가 또는 최고 통치자가 어떤 모양과 어떤 소재로도 돈을 발행할 수 있었고 다른 나라의 돈과의 교환가치도 일방적으로 선언하는‘화폐국정설(state theory of money)’이라고 한다.  


동양과 서양의 돈에 대한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돈을 물건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돈을 경제적 가치를 표현하는 물건’으로 보는 반면, 동양에서는 ‘돈은 다른 물건의 가격을 표현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정한 약속’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서양의 관점은 일종의 진화론적 화폐 사상인 반면에 동양의 관점은 일종의 창조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제학자 칼 멩거(Carl Menger)는, ‘화폐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화폐는 거래 편의를 위해 개인들이 고안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화폐는 자연 발생적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일종의 진화론적 화폐 사상인 것이다. 실제로‘화폐의 기원’은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Darwin)의 ‘종의 기원’을 화폐 이론에 적용한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상극이듯이 멩거의 화폐사상은 화폐국정설, 즉 화폐는 국가가 창조한 것이라는 이론과 상극인 셈이다.    

 

돈에 대한 오해    


100여 년 전 영국의 비평가이자 사회사상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엄청난 폭풍우 속에서 한 남자가 금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갖고 바다로 뛰어들어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린다면, “그가 금을 소유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가? 러스킨의 역설처럼 과연 내가 금에 의해 소유를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금에 비할 수 없는 영원한 주님의 사랑에 자신의 삶을 투자하길 기도해 본다.

    


오해 1. 내가 번 돈이니 내 마음대로     


자본주의의 근간은 사유 재산권이다. 열심히 일해서 거둔 소득이기에 처분권도 자신에게만 있다는 주장이 타당성 있어 보인다. 소유자의 권리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재산권을 절대화하고 공공의 이익을 뒷전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과연 돈은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단지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서 노력을 덧붙여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돈을 번 것이다. 우리는 맡겨진 재산에 대해 관리자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 돈이라는 착각으로 사치와 방탕 그리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자녀를 특권과 편법 그리고 금권으로 좋은 대학에 보내는 일은 죄악이다. 부잣집 자녀일수록 사회에 덕을 많이 받았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시켜야 한다. 

어리석은 부모일수록 아이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공부만 잘하면 돼. 고액과외, 유학 걱정이랑 하지 마라. 부모 돈은 다 내 것이야.”    


오해 2 :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은 하루 60~70% 이상 돈 생각을 한다고 한다. 사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도 적다. 그러나 돈으로 자식을 키웠다면 자식은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인다. 돈으로 세상을 이기고 사랑을 이룬 것 같았지만 그런 성공과 사랑은 쉽게 떠난다. 돈이 있다고 해서 죽음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다. 올바른 경제관념과 돈으로부터의 자유가 진리에 이른다.    



 오해 3 :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    


탐욕은 만족을 모를 때 솟아나는 자기기만이다. 돈으로 행복을 쫓아 가는 것은 영원히 벗을 수 없는 족쇄와도 같다. 그러므로 ‘소유=행복’이라는 등식이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부자가 더 행복할 것이라는 가정이 잘못되었고 부자는 가진 것 때문에 더 불안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돈이 많을수록 더 행복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오클랜드 대학 연구팀은 17일 뉴질랜드 언론에 자신들의 연구결과,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다는 말은 환상에 불과할 뿐이라며 사실은 그 반대가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뉴질랜드 심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연구결과 어느 정도까지는 돈으로 행복과 건강은 살 수 있는 것으로 나타 났다." 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의 닉힐 센굽타 연구원은 자신들의 연구 목적은 돈 없는 사람들이 곧잘 '돈 많으면 골치만 더 아프다' 는 식으로 자위하는 말의 진실성을 캐보는 데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같은 말은 자위를 위한 자기기만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사람들은 은행 잔고가 늘어나는 데 따라 행복의 수준은 높아지고 스트레스는 적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돈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부터 걱정해야 한다며 따라서 스트레스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스트레스는 더 많고 행복과 생활에 대한 만족도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능력은 더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감은 크고 스트레스는 적어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은 적어도 뉴질랜드에서는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수입과 생활의 질 측면에서 볼 때 봉급 인상 액수보다는 그 비율이 더 큰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봉급이 1만 달러이던 사람이 2만 달러로 100% 오른 것과 10만 달러이던 사람이 20만 달러로 오른 것이 행복감 상승도에서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그는 의사 결정자들은 이번 연구결과를 거울삼아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 행복감은 더 느낀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번 연구는 지난 2008년 여자 2천746명과 남자 2천4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루어졌다. 조사 대상자들의 가구당 중간 소득은 6만 5천 달러였다.    


오해 4: 다른 사람 눈에 걸리지 않으면 죄가 아니다.    


절도죄로 교도소에 있는 아들이 부모를 꼭 한번 면회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면회 온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마자 “착한 아이가 왜 남의 물건을 훔쳤느냐?”의 통곡이 나왔다. 이때 아들은“어릴 적 아버지가 운전하다가 주차된 차를 긁었음에도 그대로 도망간 이유를 물렀더니‘남의 눈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했고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간 마트에서 물건 산값을 계산했을 때 점원이 실수하여 넘어간 경우가 있었다.“어머니 저것이 계산되지 않았는데요?”라고 묻자 어머니는“내 잘못이 아니잖니”빨리 내 손을 잡고 모른 채 마트에서 서둘러 나왔습니다. 이때에도 남의 눈에 안 띄었으니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에 남의 물건을 훔칠 때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키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부모들이 책임지고 꼭 가르쳐야 될 것들이 있습니다. 좋은 음식 못 먹이고, 좋은 옷 못 입어도, 일류 대학에 못 보내도 자녀 경제교육만은 꼭 가르쳐야 합니다. 자식들의 장래와 국가의 미래에 축복이 될 것입니다.    



오해5 : 인사 제대로 못 해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


학교에서도 인정받는 아이는 인성이 좋은 아이가 아닌 공부 잘 하는 아이라고 한다. 이웃 어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아이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사를 받아도, 인사를 돌려주는 것조차 불가능한 어른이나 아이들도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한 채 머리만 좋은 아이는 괴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행복은 성적순이다. 성공은 행복 순이다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은 1986년 새벽,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중학교 3학년생의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전교 1등을 하던 이 학생의 유서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이은주(이미연)의 호소가 있었다.


“난 1등 같은 건 싫은데, 난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이 되기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정말 남을 사랑하며 살고 싶은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슬픈 것을 보면 울 줄도 알고, 재밌는 얘기를 들으면 웃을 수도 있는 사람인데. 엄만 언제나 내게 말했어, 그러면 불행해진다고.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잖아. 엄마, 성적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미워해야 하고 성적 때문에 친구가 친구를 미워해야 하는데도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하나님 왜 이렇게 무서운 세상을 만드셨나요. 선생님 왜 우릴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 살게 내버려 두셨나요. 행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성공은 행복 순이어야 한다.

한국의 경쟁력은 최고 수준이 됐지만, 행복지수는 경제적 성과에 훨씬 못 미친다.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의대를 가는 성향이 있다. 아마 잘살기 위해 하는 공부가 쓸데없는 비용만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은 보편화 되어있다. 누구든지 시기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대학진학률이 70%에 이르러 OECD 국가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사교육 과잉은 개인적으로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면서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이들의 목적은 1등이 아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은 아이의 장래에 마이너스효과, 자기 결정력을 상실하고 지시만을 기다리는 약한 아이로 만든다. 아이가 혼자서 할 때보다 자신이 도와줄 때 더 빠르다는 생각, 아이가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을 주지 않고 말해버리는 것이 편하지 않습니까? 대학생이 되어도 수강신청조차 못 하는 아이를 돕는 것이 사랑이라고 포장하거나 타당하기라도 합니까? 


아이가 스스로 느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아이가 스스로가 의사결정하고 문제 해결해 가는 능력을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과잉보호는 독이 된다. 특히 돈 관리 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은 도박꾼과 절제하면서 일하는 도박장의 딜러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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