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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진 Aug 08. 2024

사서 고생하는 사람의 동아리 회장 일지

<역동(力動)> 식물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소곤소곤 대화를 나눈다. 나도 몸을 숙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분의 미소는 마치 그분이 한평생 그렇게 기대감 넘치는 삶을 살아온 걸 증명하듯이, 우리의 인생에는 앞으로 즐거운 일이 가득할 것이라고 알려주듯이 환하게 빛났다


지금까지의 길지 않은 삶을 돌아보면 항상 문제를 만드는 건 나의 알 수 없는 희생정신이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일이 있으면 그저 대세를 따르면 될 걸, 괜히 ‘나라도 해야지 안 그럼 누가 해’라는 마음이 들어 손을 번쩍 들어버린다. 쉽게 말하자면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이다. 과 미술 동아리의 회장직도 그런 식으로 맡게 되었다. 처음엔 태평한 마음이었다. 선배들이 하는 대로 따라만 하면 되겠지. 하지만 내가 대학에 입학한 다음 해 최악의 전염병인 COVID-19가 터졌고, 2020년과 2021년 미술반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했다. 동아리 활동은 고사하고 2년간 선배나 동기들 얼굴을 본 적도 없다. 그렇게 미술반에는 2년의 공백이 생겼고 나는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 채로 2022년 미술반의 55대 회장이 되었다.


내가 파악한 미술반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미술반은 단합이 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부라면 모여서 연주 합을 맞추고, 합창부라면 모여서 노래를 부르겠지만 미술만은 모여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각자 집에서 그린다. 자고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내성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COVID-19로 인해 그간 부원들끼리 만날 기회도 없었으니 오죽하겠는가? 2022년 2월 새 학기 개강 직전쯤, 나는 부원들끼리 친해질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다 같이 미술관에 전시를 구경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전시 관람료부터 이후의 식사까지 전액 회비 지원이었다. 하지만 호기로운 제안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큰 절망에 빠진 나는 일정을 취소하고 대신 그날 서울어린이대공원에 가서 동물과 식물 구경을 했다. 위의 그림은 2022년 전시에 낸 작품인데 이 날의 어린이대공원 식물원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다. 동물과 식물 구경은 사람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좋다.


두 번째 문제. 미술반의 가장 큰 행사는 가을 전시인데, 이와 관련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해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알아서 다 준비해야만 했다. 그림 액자조차 어디서 맞춰야 하는지 몰랐다. 홍대 화방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다가 들어간 한 화방에선 3호 캔버스 액자 하나에 13만 원을 불렀다. 누가 봐도 어리바리해 보이는 비전공자에게 바가지 씌우려는 속셈이었다. 다행히 다른 화방의 인상 좋은 주인 할아버지께서 알아서 싼 액자로 맞춰 주셔서, 액자에 회비를 탕진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전시 준비만큼 부담스러운 일은 또 있었는데 바로 ‘연락 돌리기’였다. ‘연락 돌리기’란 졸업한 선배님들께 전화를 걸어 전시회 일정을 안내하고 후원도 받는 일이다. 미술반은 워낙 오래된 동아리라 가장 위의 선배님은 무려 1973년 졸업생이시다. 너무도 부담스럽지만 전시회 준비 비용은 모두 선배님들 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화를 걸면 선배님들은 간만의 연락에 놀라기도, 귀찮아하기도, 또 반가워하기도 했다. 여자 선배님들은 특히 반가워하셨다. 의대에는 여학생 자체가 적으니, 젊은 여학생의 전화에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느끼신 것 같다. 만나서 밥을 사 주신 분들도 있었다. 그중 의원을 운영하는 L 선배님이 있었는데, 식사를 겸해 그분의 병원에 초대를 받았다. 깨끗한 병원 로비 벽에는 그림이 여러 점 걸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미술반의 다른 선배님들이 직접 그려 선물해 주신 거였다. 과거의 미술반은 지금과 달리 부원들 간의 사이가 돈독했나 보다. L 선배님은 환갑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귀여움과 재치를 갖춘 분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날 알게 됐으니 앞으로 너의 인생은 한층 재밌어질 것’이란 말이었다. 나는 그로부터 몇 달 뒤인 가을 미전의 마지막 날에 그 말이 맞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학업과 병행한 미전 준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바빴다. 전시 날짜에 임박해서는 할 일이 더욱 많아져 공부와 주객전도가 될 정도였다. 그래도 액자를 맞추고, 전시할 홀을 빌리고, 포스터와 팸플릿을 만드는 일까지 시간 내에 모두 마치고 탈없이 전시를 열 수 있었다. 탁 트인 홀에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그림들은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을 미전 마지막 날엔 뒤풀이가 있었다. L 선배님을 포함해 시간 되는 선배님들도 몇 분 오셨다. 역시 술이 들어가니 단합이 안 됐던 부원들도 이 날 만큼은 신이 나 늦게까지 먹고 떠들었다. 나는 전시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1년간 누적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때 L 선배님이 집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건배사가 아직까지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선배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린 후배들을 흐뭇하게 둘러보면서, “앞으로 너희의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무 기대되지 않니? 찬란한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 건배!”라고 외치셨다. 그분의 미소는 마치 그분이 한평생 그렇게 기대감 넘치는 삶을 살아온 걸 증명하듯이, 우리의 인생에는 앞으로 즐거운 일이 가득할 것이라고 알려주듯이 환하게 빛났다. 2022년 한 해 동안 내 머릿속은 미전을 잘 마칠 수 있을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결국 돌아보면 모든 게 잘 끝났다. 처음엔 회장을 맡은 걸 후회하기도 했지만 맡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었을 값진 경험도 많이 했다. 동아리 선배이자 인생 선배인 그분의 말대로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내 인생에 즐거운 일은 너무 많을 것이다. 미리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난 앞으로도 사서 고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이전엔 몰랐던 행복을 찾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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