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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진 Jul 27. 2024

프롤로그 : 나의 오랜 친구, 글과 그림

어릴 때부터 난 창작욕구로 가득 찬 아이였다. 초등학생 땐 연습장에 만화를 그려 가족이나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두꺼운 연습장 몇 권을 가득 채울 정도로 나름 장기 연재를 했다. 만화의 내용은 처음엔 평범한 여학생의 일상물이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욕심이 생겨 외계인에 어둠의 조직까지 등장해, 끝없이 넓어지는 세계관에 스스로 부담을 느껴 관둬 버렸다. 그 뒤로도 만화를 다시 그려보자고 늘 생각은 했지만, 머리가 커지면서 초등학생 때만큼의 과감함은 사라져 버린 건지 시작할 엄두도 안 나서 그저 생각에 그쳤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 과의 미술 동아리 반장이 되어 전시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전시장 벽에 그림을 걸고, 부원들에게 그림의 제목과 설명을 수합해 작은 라벨지에 인쇄해 그림 옆에 붙였다. 어떤 부원은 설명을 한 줄만 적어내기도 했고, 어떤 부원은 설명이 너무 길어 라벨지 한 장에 다 못 담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딱 중간 정도로, 2~3줄 정도 적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내 그림에 대해 할 말이 두 세 문장밖에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라벨지의 크기를 생각해 줄이고 줄였을 뿐, 제대로 쓰자면 몇 바닥이고 쓸 수 있다.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 버리면 꼭 집에 와서 후회한다. ‘아, 그 말은 하지 말걸.’, ‘이렇게 말할걸.’. 괜히 나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고자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과 그림이 좋다. 글과 그림은 나의 생각을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다듬고, 거짓 없이 표현할 수 있는 도구다. 창작을 하면서 나조차도 몰랐던 나의 깊은 마음속 숨겨진 생각까지 알 수도 있다.


이따금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가는데, 작품에 대한 설명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친절한 미술관을 선호하는 편이다. 도슨트가 있다면 꼭 듣는다. 그림을 보고 각자의 주관대로 해석하는 것도 작품 감상의 한 방법이겠지만, 나는 작가를 잘 이해한 후 그림을 보고 싶다. 그림을 그릴 때 그 사람의 마음, 상황, 시대적 배경, 또는 가족관계 등을 알고 나면 작품에 대해, 그 작가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도 그림만 그리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라든가 그리면서 한 생각들을 더 이야기하고 싶다. 이 글의 제목이 ‘글그림 김진진 ’인 이유다.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의 작은 가치들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나만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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