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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진 Aug 24. 2024

글쓰기와 용서

<생각 잡기> 날아가는 생각들을 붙잡아 종이에다 본뜨기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예전보다 성숙해져 있었고,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긴 것이다


기약 없는 휴학에 돌입하면서 무기력하게 지내기보다는 그간 관심 있던 걸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해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지난 6월부터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글을 드라마틱하게 잘 쓰게 되는 기술 같은 건 없다. 다만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건 꾸준한 글쓰기 습관이었다. 뭘 쓸지 모르겠어도 하루에 최소 30분씩은 진득하게 앉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써보라는 거였다. 그리고 각자 큰 주제를 정해 그 주제와 관련된 글을 일주일에 하나씩 써오라고 하셨다. 다른 수강생들은 육아나 마케팅 등 본인 전문 분야의 주제를 정했지만 나는 그저 나와 나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과 감정 전반에 대해 쓰기로 했다. 일주일에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한 편씩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늘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옮겨 적고, 집에선 공책에 휘갈겨 놓은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고 조금씩 살을 붙여가면서 글을 썼다.


바깥에서든 집에서든 꾸준히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돌이켜보면 바쁘게 살아온 지난날들은 내가 뭘 원하는지, 내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을 안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자화상을 그려본 적이 있는데, 부끄러워도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세심히 관찰해야만 날 닮은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거울을 비추듯 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진정하고 싶은 진솔한 문장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기 위해 투자하는 하루 30분은 그간 만나지 못했던 깊은 마음속의 나와 대면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더 이해하게 되었다. 살면서 누구나 상처를 받고, 그게 무척 가까운 사람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단정 짓고 혼자 마음의 벽을 쌓곤 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내 인생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상처받은 경험은 다시 떠올리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기 때문에 글로 쓰기까지 많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차분하게 그때를 상기하고 글로 정리해 보니 어렸을 땐 몰랐던 그 당시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예전보다 성숙해져 있었고,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긴 것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이다.


우리는 서로 상처받고 상처 준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또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지난날의 나는 남을 용서할 줄은 모르면서 나만은 언제나 용서받길 원했던 것 같다. 가볍게 시작한 글쓰기를 통해 용서를 배우고 나아가 나의 마음의 짐까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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