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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l 03. 2017

살면서 세 번째로 잘 한 일

이젠 서울의 아파트가 답답해서 지내기가 힘들다.


눈을 들면 사방에 초록의 산이 있고 눈 아래엔 초록색이 선명한 잔디가 있는 마당 있는 집에서 지내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니 왜 시골에서 살던 사람이 도시에서 답답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내가 양평에 자리 잡고 두 집 살림한 지 벌써 삼 년째이다.


오갈 때마다 짐보따리 들고 나르느라 고생은 되지만 이 생활을 안 했더라면 무엇으로 세월을 보냈을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젠 남편도 나도 시골 생활이 주는 편안한 여유에 푹 빠져들었다.


시골에서 지내는 날이 많을수록 텃밭과 잡초를 날마다 손볼 수 있어서 그리 벅차게 느껴지지 않는다.


앞마당과 뒤뜰을 오가며 선선한 시간을 골라 조금씩 일을 하다 보면 별로 힘들지 않다.


이웃도 점차 늘어서 심심한 오후엔 하루는 이 집과 다른 날은 저 집과 이런 식으로 날마다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 건강을 위해 지은 집인 만큼 너무 번잡스러운 인간 관계도 싫어서 적당히 간격을 두고 지내려고 조심한다.


손님이 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지만 음식 준비나 함께 노는 것도 시간이 길어지면 어찌나 피곤한지 가고 나면 며칠 동안 맥을 못 추고 힘이 드니 어쩔 수 없이 손님 초대도 좀 줄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생전 표현이라곤 없는 친정 엄마가 내게 집 지은 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했다고 칭찬을 하셨다.


내가 살면서 잘한 일이 얼마나 없으면 그럴까마는 난 내가 한 일 중 세 번째로 잘한 일로 꼽고 있다.


첫 번째는 다혈질인 내가 하고 많은 남자 중에 우리 남편처럼 온순한 사람을 골라 결혼을 한 것이고, 두 번째는 말 많고 탈 많은 첫째의 입시를 무사히 잘 치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세 번째로 잘 한 일이 생겼다.


자기 집 지은 사람이 하는 뻔한 자지만 주변의 다른 이웃집을 다녀볼수록 우리 집이 마음에 든다.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전원주택 단지에도 가보았는데 아무리 전망이 좋아도 이웃집과 가까이 붙어 있는 건 싫을 것 같다.


우리 집은 마을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위치한 산비탈의 첫 번째 집으로 뒤쪽으로는 이웃집들이 몇 채 있고 거리를 좀 둔 앞집은 방향이 돌아앉아 있으며 집 양 쪽으로 밭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몇 년 동안 시간을 두고 천천히 땅을 고른 뒤에 신중하게 집을 지은 것이 실패를 줄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직장 생활이 힘들 때마다 언젠가 은퇴를 하고 나면 세간살이를 실은 트럭을 타고 시골에 지은 황토집을 향해 달리는 부푼 꿈을 꾸었다.


암에 걸리는 변수가 생겨서 그 꿈이 십 년 정도 당겨진 것인데 가을쯤 뒷마당에 황토방을 짓고 나면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린다면 원래도 아무 생각이 없던 나였지만 요즘은 더 아무 생각이나 걱정도 없이 사는 것인데 이런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다른 사람들은 그게 제일 좋은 거라며 내 입을 막곤 한다.


하지만 미국의 이모 집에 간지 한 달이 되도록 엄마인 내가 전화 한번 안 하는 건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첫째의 원망에 둘째는 작년인가 일본 도쿄타워에서 야경을 보여주느라 영상 통화를 했더니 내가 좋은 건 너희들이나 보라고 하면서 통화를 끊었다며 둘이서 쿨내 쩌는 엄마라고 키득댔다.


정말이지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산다.


설마 이래도 되는 거겠지?





하루하루 자라는 작물들
천둥번개에 놀라 거실 유리창에 달라 붙은 청개구리
첫 잔디깎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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