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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l 10. 2017

살구잼 만들기

살구잼을 만들었다.


옆 밭에 살구가 익어서 떨어지도록 아무도 따지 않는 살구였다.


원래 한 필지였던 밭을 나눠서 산 우리에게 주인은 땅 팔 때 우리 마음대로 따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처음에 우리는 그 열매가 개복숭아인 줄 알았다.  


놀러 온 지인이 한 말을 그대로 믿고 익지도 않은 풋살구를 몽땅 따서 개복숭아 효소를 만들려던 시누이에게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작년에는 집 짓느라 바빠서 살구가 익어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지냈고 올해엔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가 눈에 들어왔다.


밭주인은 양평 시내에 살고 있고 동네 부동산에서 대신 관리해주고 있는데 올봄부터는 펜션을 하는 어르신이 사과나무를 심어 놓은 그 땅에 콩이며 고구마를 심어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다.  


그런데도 살구를 안 따고 계시기에 여쭤보았더니 자기 것이 아니라서 손을 안 대고 계셨다고 한다.


농사짓는 분의 정직함이었다.


나는 밭주인이 우리더러 마음대로 따라고 했다며 벌레 먹고 떨어져서 얼마 남지 않은 살구 중에 그나마 성한 것을 골라 어르신 몫으로 챙겨드리고 나머지를 씻어 잼을 만들었다.


봄에 딸기잼을 만든 이후 앵두 잼을 만들려고 했으나 이웃의 농장에 있는 앵두를 뒷집 할머니가 먼저 다 따가시는 바람에 앵두 잼은 건너뛰고 살구잼이다.


돈 주고 사지 않고 저절로 나는 것을 따서 만드는 재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쏠쏠하다.


탕을 분량보 적게 넣어 덜 달게 만들었는데 대여섯 병의 살구잼은 먼저 만나는 이웃부터 나눠 주었다.


우리 집 마당에도 살구, 자두, 앵두, 체리, 대추, 감나무를 심어놨으니 삼사 년 후에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가뭄에 잎이 나지 않아 죽은 줄 알았던 감나무 묘목이 장마철에 초록색 이파리를 수줍게 피워 올려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미니 단호박과 맷돌호박의 모종을 키워 곳곳에 심어놨더니 호박넝쿨이 날마다 뻗어 나와서 그 기세가 대단하다.


부드러운 호박 이파리는 쪄서 쌈 싸 먹고 조그만 호박 열매는 오갈 때마다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시골 생활의 재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농사 밑이 걸다.'는 처럼 돈 들이지 않고도 넉넉하게 나오는 농작물로 싱싱한 먹거리를 장만하는 즐거움은 남에게도 마구 권하고 싶도록 크다.


장마철에는 바깥일을 할 수 없어서 그럴 땐 이웃집에 놀러 가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얼마 전에 새로 사귄 이웃은 내 또래여서 편한 데다 남편들의 직업도 비슷해서 함께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어색할 줄 알았던 첫 만남이 잠시 지나자 서로 편안하게 느껴진 나머지 저녁 식사까지 이어져 그 집 정원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밤이 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말 주택인 우리 집은 모든 게 옹색한데 비해 마음먹고 증축한 그 집은 건축 외장재 사업을 하는 남편 덕분에 으리으리한 규모를 자랑하고 안주인의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솜씨는 구경할 것이 많았다.


말수 적은 그 댁의 남편은 우리 부부에게 마음을 쉽게 열었고 나에겐 성격이 무척 좋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앞만 보고 맹렬히 달리던 시절의 나는 짜증이 많고 늘 초조했는데 요즘의 나는 모든 게 감사하고 욕심이 없어져서 항상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차이가 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데크에 나와 새벽부터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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