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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l 16. 2017

장마철에는 떠날 수 없는 시골집

올해는 마른장마라고 예보했기에 제습기 장만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기습적으로 쏟아지는 장맛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사게 되었다.


ALC로 지은 집의 단 한 가 결점이 바로 습기에 취약하다는 점이어서 항상 화장실 휴지가 눅눅해서 끊기곤 한다. 수건은 아예 바구니에 담아 욕실 문 앞에 내다 놓고 쓰고 있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보일러를 돌리기도 하고 에어컨을 제습 기능으로 온종일 가동하는 등 습기를 잡기 위한 방법을 총동원해야 했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습도는 90% 가까이 치솟아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등줄기가 뻐근해서 그야말로 삭신이 쑤셔댄다.


서울로 돌아와서 뽀송한 에어컨 바람을 쐬니 그제야 다시 몸이 돌아왔다. 시골집은 계곡도 가까이 있고 문 밖이 모두 땅이어서 습기가 가득하다. 이번 장마에 습기가 관절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걸 온몸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습기는 시골집에 오자마자 열 일을 하며 안방 옷장의 습기를 여러 통의 물로 쏟아낸다.


네이버 암 카페 <아름다운 동행>은 기독교 카페여서 한 달에 한 번 다락방 기도회가 열린다. 동행 운영진과 몇몇 회원들로 이루어지는데 시골집에서 두번째로 다락방 기도회를 비 오는 토요일에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앎에 출연했던 두나미스 부부를 KBS에서 계속 촬영하는 관계로 이번 다락방 기도회에 참석하는 두나미스님을 찍기 위하여 다큐 촬영팀도 함께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행 운영진을 시골집에 몇 번 초대했지만 제대로 대접해서 보낸 적이 없어서 이번엔 시장을 보고 음식을 몇 가지 차려보고자 했는데 마침 옥수수 수확철이라서 금방 딴 옥수수를 쪄먹어 보겠다고 모인 것이지 절대로 카메라가 온다고 해서 요리를 하기로 한 건 아니며 다행히 이웃의 베테랑 주부가 도와주시겠다고 해서 그나마 간신히 차릴 수 있었다.


잡채, 부추전, 깻잎전, 애호박전, 골뱅이 소면 무침, 닭 매운 찜 이렇게 준비했고 촬영팀이 가고 난 뒤 저녁은 콩국수와 감자전으로 먹었으며 간식으로 옥수수를 계속 쪄서 먹었다.  


선하고 유쾌한 세 가족이 아이들도 함께 데려와서 편안하고 즐거운 기도회 모임이 이어지는 동안 촬영팀은 쉬지 않고 카메라를 돌려가며 찍었다.


웃으면 눈이 하나도 안 보이는 철관음 피디님은 촬영 팀의 점심 상을 따로 차려드려도 연신 사양하며 "아닙니다."를 외쳐댔지만 결국 우리가 점심 먹는 장면을 모두 찍고 난 다음에 다 식은 음식을 드셨다.


아침 일찍부터 음식 준비를 했지만 도와주신 이웃 분과 잠시 커피 한 잔 하느라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 인견으로 된, 할머니들이 주로 입는 알록달록한 원피스 위에 앞치마를 두른 채로 카메라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아... 이를 어쩌나)  


몹시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음식을 차리고 먹기까지 하고는 중간에 안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나를 찍으러 온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입는 원피스를 입고 촬영할 줄이야!


옥수수는 따서 두 시간 안에 먹으면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맛있고, 삶는 것보다는 쪄서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해서 잎을 한 장 남겨 벗기고 찜기에 쪄서 먹었더니 쫄깃쫄깃 달고 맛있었다.


동네에서 따서 파는 걸 한두 자루씩 싣고 떠난 회원들은 그날 밤 안으로 쪄서 냉동실에 넣느라 아마 다들 새벽까지 수고를 해야 했을 것이다.   


시골집에서 아이들은 비를 맞으며 잔디에서 뛰어놀고 다락에 올라가 자기들끼리 재미나게 놀다.


남편은 주말 동안 다른 곳에 놀러 가서 이번엔 함께 하지 못했고 나더러 서울로 언제 오느냐고 물었지만 장마철이라 시골집을 관리하기도 해야 하고 이젠 아파트가 답답해 돌아가기가 싫어서 대답을 안 했다.


게다가 여름엔 마당에 잡초가 돌아서면 자라기 때문에 가끔 들리는 시골집무성한 잡초는 세상 무서운 존재이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집을 잘 돌봐야 하니 장마가 끝날 때까지 서울은 당분간 굿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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