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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l 23. 2017

황토방을 짓기로 하다.

친정엄마의 소원으로 우리집 뒷마당에 세 평짜리 황토방을 짓기로 진작부터 마음 먹고 있었으나 적당한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두 곳의 상담을 통해 견적을 받아봤는데 한옥 형태로 짓는 집은 현대적인 본체와 너무나 동떨어지고 비용도 삼천 만원이 넘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전공이 건축인 우리 남편은 그런 내게 슬며시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집을 지어주신 방사장님이 지금 다른 곳의 공사를 맡아서 바쁘신데 그 일이 끝나고 나서 황토방의 시공을 부탁드리면 어떨까 하면서 그렇다면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지금의 집과 어울리게 지어주지 않겠느냐고 했다.


묘안 중의 묘안이라 나도 무릎을 치며 찬성했다.


우리 집을 설계해주신 교수님에게는 황토방의 설계를 대강이라도 부탁드리면 안 해주시겠냐는 얄팍한 계산도 아울러 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열 시에 교수님이 운영하는 카페 겸 공방에 또다시 모였다.


세 평짜리 황토방을 짓는데 교수님 내외와 우리 부부 그리고 방사장님까지 두 시간 동안 열띤 토론과 공방이 벌어졌다.



황토방에 대한 각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 - 다른 소원은 없고 창문을 창호지로 만들어주시면 더 바라는 것이 없어요.


교수님 - 동쪽에는 앉아서 밖이 보이도록 낮고 긴 창문을 내고 서쪽으로는 백운봉을 누워서 보기 위해 높은 창문을 내면 환기도 효율적이겠고 벽장 겸 선반을 달아서 이불 등을 수납하는 공간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손선생님 - 황토 벽돌로 된 외관은 본체와 너무 동떨어지니 지붕과 벽은 본체와 같은 마감재로 마치 미니집같이 지으면 재미있을 듯하고 처마를 조금 뺀 지붕은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끔 배수받이를 하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황토 미장의 벽엔 초배지같은 무늬없는 한지로 마감을 하고 천장은 편백나무로, 바닥은 한지에 삼베를 붙이고 치자물을 들이면 아주 멋있어요.


방사장님 - 황토 벽돌과 구들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 본 뒤에 날이 좀 시원해지면 공사에 들어가도록 합시다.


남편이 각자의 주장에 대해 약간의 의견을 보태거나 수정하는 걸로 본인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아직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좀 더 의논을 해야겠지만 일단 전체적인 방향은 위와 같이 잡았고 황토방의 건물 배치는 직사각형으로 본체와 직각이 되는 방향으로 놓기로 했다.   


황토방 지붕은 본체와 같은 방향과 기울기로 하기로 했다.


불 때는 황토방만 생각했지 무엇을 어떻게 지을지 아무런 청사진이 없었는데 설계자와 시공자 그리고 누구보다 적극적인 손선생님 덕분에 이번에도 나는 큰 고민없이 뜻밖의 멋진 설계를 얻을 수 있었다.


교수님은 남들이 설계를 어디까지 해주느냐는 질문에 "개집도 짓습니다."라고 우스개 말씀으로 대답한다고 하시더니 정말 세 평짜리 황토방을 짓는 것에도 모형을 직접 만들어서 보여주시는 등 여전히 열정적으로 대해주셨다.


중복인 토요일은 비가 오다 말다 해서 습도만 잔뜩 올려놓은 날이었지만 복달임은 건너뛸 수 없어서 일찌감치 닭요리를 하고 콩국수를 준비했다.


상담이 끝난 뒤에 손선생님은 카페를 지키느라 교수님과 방사장님을 모시고 실측도 할 겸 우리 집에서 점심을 대접해드렸다.



예산인 이천만원에서 공사를 하려면 전체적으로 조율을 해야겠지만 소소하고 재미있는 발상을 보태어 황토방을 짓는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은 다시 뛰었다.


더운 여름에 휴가 계획도 없이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친정 부모님을 생각하면 얼른 황토방을 짓고 나서 건강이 안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첫 수확한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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