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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ug 09. 2017

펜션 주인 노릇하기

여름휴가가 다가오자 양평의 우리 집을 빌려 쓸 수 있느냐는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비어 있는 집이니 내가 서울의 열대야를 견디기만 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서 흔쾌히 수락했다.


7월 마지막 날은 방학을 한 예전 동료가 다섯 명의 동료 선생님들과 하룻밤 묵어가겠다고 하시며 숙박비를 넉넉히 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동안 남편의 지인과 나의 지인에게 집을 두 번 빌려 준 일이 있었는데 인원과 상관없이 하룻밤에 십 만원을 받았다.


깨끗하고 예쁜 집에서 힐링하고 간다며 무척 좋아한 선생님이 내 통장으로 부친 돈도 십만 원이었다.


이튿날은 암 카페 아름다운 동행의 운영진 부부가 박 사일의 일정으로 아이들과 휴가를 보내러 왔다.


현관문이 두꺼워 번호키를 달지 못한 우리 집의 열쇠는 찾기 쉽도록 집 뒤의 화분 밑에 넣어뒀다.


집 주위에는 네 대의 카메라 달려 있어서 궁금하면 휴대폰으로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주차장에 차가 들어왔는지,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잘 하고 있는지 남편은 회사에서 나는 집에서 심심하면 휴대폰으로 손님들을 감시(?)하는 재미에 들렸다.







아침저녁의 선선한 시간에는 마당에 나와 있으면 좋은데 손님들은 대부분 늦잠을 자고 저녁 사 먹으러 나가느라 그 좋은 때를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공연히 내가 안타까웠다.


양평 용문 연수리의 우리 동네는 용문산과 백운봉이 있어서 산이 높아 골도 깊고 계곡물도 많아서 여름에는 피서객들이 깨끗한 계곡을 따라 길을 꽉 채우며 차를 세우고 물놀이를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의 펜션 운영도 덕분에 수월하다.


운영진의 '아빠는 밥팅이'와 '엄마는 강하다' 부부는 마지막 날 우리 부부와 밤늦게까지 얘기하며 야참까지 먹고서야 집으로 떠났다.


집안에서 휴대폰만 보고 있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반딧불이를 보러 가자고 꾀어서 밤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재작년에 남편과 함께 봤던 수많은 반딧불이는 그새 집이 많이 들어서고 가로등까지 생기자 어디론가 더 깊은 곳으로 떠나버렸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채집망까지 들고 나섰는데 반딧불이가 없어서 당황한 나는 그 근처에 사는 이웃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더니 요즘엔 못 봤다는 말을 한다.


9시쯤이었는데 반딧불이의 활동 시간에 비해 너무 늦었나 싶어서 검색해보니 반딧불이는 잡아서도 안 되는 천연기념물이었다.


실망한 아이들에게 달무리가 진 동네 길을 걸어오는 것도 여름밤의 추억이 된다며 다정한 아빠인 아밥님이 애써 달랬다.


다행히 집에 와서 장수벌레 한 마리를 발견하여 아이들이 기뻐하며 소중하게 담아갔다.


마지막 여름 손님은 둘째 딸과 친구들이었다.


다섯 명의 여자애들을 용문에서 태워와서 내려주곤 남편과 나는 오후 세 시에 집을 나와야 했다.


일요일 그 시간이면 서울로 가는 도로가 막히는 터라 어디선가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양평 생활 삼 년차가 되다 보니 이웃도 꽤 사귄 나는 스스럼없이 갈 수 있는 집이 두 곳이나 되어 한 집에선 저녁을 먹고 다른 집에선 와인까지 얻어마시고 열 시쯤 서울로 나서니 하나도 막히지 않고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딸아이는 친구들이 집이 너무 예쁘다고 한다면서 술과 과자를 잔뜩 사와 먹을 게 넘친다고 했다.


나는 딸과 친구들을 위해서 돼지고기를 재워 제육볶음을 준비하고 옥수수를 쪄놓고 복숭아 한 상자를 사다 놨다.


어제 시골집에 와서 보니 소주병 네 개와 맥주 피쳐 한 병과 엄청난 쓰레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남긴 것이었다면 얼굴을 찌푸리며 치웠겠지만 우리 집의 귀염둥이인 둘째와 친구들이 남긴 흔적이라 맨손으로 기꺼이 쓰레기를 나눠 담고 치웠다.


첫째는 예전의 셋집을 두 번이나 빌려 많은 친구들과 자고 갔지만 학생이 돈이 어딨냐는 말로 나의 요구를 묵살했는데 착한 둘째는 무슨 소리냐며 당연히 돈을 받아야지 하면서 이만 원씩 걷어 십만 원을 내게 부쳐줬다.


겨울엔 황토방까지 지으면 본격적인 손님맞이로 남편에게서 받는 생활비 외에 수입이 없는 나에게 시골집을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난방비 등을 벌충할 수 있을 것이다.  


별다른 노력도 없이 일주일 동안 오십만 원이 생겨서 그걸로 황토방을 설계해준 교수님 가족에게 식사도 대접했고 티브이가 고장 났다는 친정 엄마에게 새로 하나 사드리겠다고 했다.


다행히 리모컨 조작 오류여서 케이블 기사가 무료로 잘 고쳐주고 갔다는 얘기를 오늘 아침에 엄마가 전화로 들려주셨다.


펜션보다 깨끗하고 누가 썼는지 모르는 걸로 사용하는 찝찝함이 없는 데다 퇴실 시간이 자유로와서 그게 좋다고 친구들이 말했다고 딸이 전한다.


여름 장사는 이걸로 접고 황토방을 잘 지어서 겨울 장사에 대비해야겠다.


계곡엔 물고기와 다슬기가 산다.


 

끝물 옥수수 끝까지 영글은 알맹이가 눈물겹다.
잎은 장마 전에 모두 스러지고 없는데 뒤늦게 꽃대가 올라오는 엇갈린 운명의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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