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 내외와 우리 부부가 송년회를 한다고 동네의 새로 생긴 감자탕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미세 먼지로 목이 잠긴 나는 어제따라 떠들게 되어 쉰 목소리로 쥐어짜듯 말하다가 문득 남편에게도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동안 한 번도 안 한 얘기라며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인즉, 며칠 전 우리 집에 온 나의 올케를 대할 때 자신은 마음과 달리 참 어색했는데 매형은 한결같이 자신의 아내인 나를 잘 대해주고 좋아해줘서...
여기까지 말하다가 남편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울기 시작하는데 헐! 나는 웃음이 빵 터져서 고개를 숙이고 팔로 얼굴을 감쌌다.
집 앞 엘리베이터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아까 왜 울었냐고
고마워서 울었단다.
남편에게 눈물이 많은 건 결혼할 때부터 알았지만 (나랑 결혼하면서 세 번이나 울던 남자다.) 어째 나이가 들수록 그 빈도수가 점점 잦아지는 것이 요즘엔 분기 별로 우는 것 같다.
안구건조증으로 인공 눈물 외엔 어지간해서 잘 울지 않는 나와 비교할 것도 없이 우리 남편은 이토록 마음이 여리고 부드러운 남자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성향도 유연해서 치킨 가게를 망해먹고 고관절 골절 수술까지 해서 한 달이나 집 안에서 요양을 할 때도 남편의 멘탈은 건재했다.
내가 만약 남편의 처지였다면 해저 이만 리쯤 굴을 파고 들어갔을 텐데 남편은 술에 의존하는 법도 없이 운동기구를 두 다리에 끼우고 혼자서 열심히 재활 치료를 했다.
신혼 시절, 내가 발견한 남편의 가장 큰 장점은 기초생활습관이 잘 잡힌 것이었다.
밥을 먹을 때 나물 위주로 맛있게 먹고 밥 한 공기를 먹고 나면 맛있는 반찬이 있어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군것질은 안 하고 식전에는 밥 맛없다고 뭐든 잘 먹지 않는다.
그러니 과식을 하거나 소화제를 먹는 건 이십 년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잠잘 땐 중간에 깨는 법 없이 숙면을 취하고, 술은 가끔 마시지만 과음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담배는 중년이 되자 알아서 끊었다.
또한 내 지인들과 함께 만날 때는 남편도 수다에 빠지지 않고 동참해서 제법 재미나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눈치도 빠른 편이고 잔머리 지수는 나보다 두세 배는 높을 것 같은 남편은 내 말에 경청과 맞장구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집안일에서 제외되는 생존법을 터득했다.
얄밉도록 살아가는 지혜가 뛰어난 남편은 백 살까지는 거뜬하고 재수없으면 백이십 살까지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