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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Dec 29. 2015

허영을 고친 값

분명 가장 싸게 샀다고 생각했다.


백화점에서 알파카가 섞인 푸른 반코트를 발견했는데 내게 썩 잘 어울리는 색상이고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벌쯤 옷을 사는 건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되고 여자의 즐거움이기도 해서 이번 겨울에는 그 옷으로 정했다.


할인 코너에 있던 옷이지만 삼십 만원이 넘었다.


나는 딸에게 배운 대로 인터넷의 최저가 검색을 통해 이십 칠만 원 가량 주고 구입했다.


구매한지 이틀 만에 카드 청구 할인이 추가된 것을 보고는 결재를 취소하고 재구매하는 방법으로 그 가격까지 어렵사리 깎아서 산 것이었다.


며칠 뒤 배송된 옷을 일주일 넘게 걸어놓고 바라보다 친정에 내려갈 때 처음으로 입고 갔다.


친정이 있는 부산에 내가 소집하는 암카페의 모임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옷을 새로 장만하여 입고 갔는데 김장이 끝나고 엄마를 모시고 쇼핑을 하러 백화점에 갔다.


마침 그 브랜드의 대규모 할인 행사있기에 나도 모르게 발길을  그쪽으로 돌렸다.


내가 입고 간 옷도 당연히 걸려 있었고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 반코트에 붙은 가격표를 보았다.  


19만 원이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그 가격이라서 나는 충격에 빠졌다.


나는 그만 시무룩해져서 부모님의 패딩을 사러 갔지만 별로 의욕이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기분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남편이 내게 옷을 사라고 따로 돈을 줘서 산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위로가 되진 않았다.


김장을 도와줘서 고맙다며 여동생과 부모님이 각각 내게 십만 원씩 봉투도 주고, 올케 김장까지 해줬더니 남동생도 그 돈 합친 것만큼이나 돈을 보냈지만 내 기분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됐다.


나는 남 앞에 서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그 코트보다 훨씬 비싼 옷도 서슴없이 사 입던 사람이었다.


멋 부리고 싶던 청춘에는 돈이 없었기에 그 한을 푸느라고 맞벌이를 할 땐 원 없이 쇼핑을 했고 일요일 오후의 우울을 충동구매로 해소하곤 했다.  


퇴직을 하고 나니 전업주부가 되어 알뜰한 소비를 해야 함에도 직장 여성의 습관은 좀처럼 떨칠 수가 없었는데 그 반코트로 인해서 나는 사치하는 병을 고쳤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그 돈이 아깝지 않았고 내 기분도 그제야 나아졌다.


그리고 이젠 체력이 좀 회복되었다고 올 겨울에 김장을 네 번이나 했더니 드디어 감기 몸살이 찾아와 며칠 째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


이래저래 공짜는 없나 보다.


암에 걸리고 나서야 건강과 인생의 소중함을 은 것처럼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교훈을 깨닫는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 봐야 아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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