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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an 03. 2016

두 집 살림하기

아이들을 다 키우고 살림에 여유도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왜 시골에 세컨드 하우스를 두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자기 집도 청소하기가 벅차서 파출부를 쓰는 형편인데  시골집까지 어떻게 건사를 할 것이냐며 좋은 줄은 알지만 선뜻 장만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내가 시골에 세를 얻어 서울 집과 왔다 갔다 하며 지낸 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지금은 밭이 쓸쓸하게 버려져서 돌아볼 것이 없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텃밭 농사에 재미를 들여 얼마나 깨가 쏟아졌는지 모른다. (정작 아직 들깨는 털지도 않고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


하지만 그 재미를 누리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수고도 만만치 않았다. 


오갈 때마다 짐보따리를 나르는 것은 기본이고  시골집의 쓰레기도 반드시 챙겨가지고 와야 했는데 먹고 지내는 데는 웬 쓰레기가 그리 많이 나오는 지 처음엔 분리수거함을 사서 층층이 쌓아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마저도 귀찮아져 장 봐온 종이상자에 되는 대로 쓰레기를 쑤셔 담아 아파트로 와서 분리하는 것이 손쉬웠다. 


서울 집에는 대학생 딸이 두 명이나 있어도 내가 며칠 시골에 다녀와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부인 내 눈에는 일거리만 눈에 쏙쏙 들어와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꽁지에  불붙은 것처럼 푸드득 거리며 온 집안을 휘몰아쳐대야 했다. 


처음엔 두 집 살림하는 것이 재미가 나고 생기에 넘쳐 즐겁게 했지만 차차 시간이 갈수록 그것도 힘이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주부인 내가 없는 집은 표가 나는지 화분에 물 주고 베란다를 씻고 휴지통을 비우고 화장실을 닦는 일은 가족들 그 누구도 책임지고 하지 않았다. 


오자마자 정신없이 집을 치우고 또 장을 봐서 식사 준비를 끝내고 나면 가족들이 하나 둘 씩 귀가해와서는 "역시 엄마가 있어야 집이 살아난다니까!"이런 말을 들으면서 괜히 흐뭇해지는 것도 이제는 식상하다. 


손이 느리고 집안일에 도통 소질이 없는 남편은 집에서나 시골에서나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여서 나는 남편을 시키느라 속이 터지는 대신 손이 빠른 내가 하는 걸로 했기 때문에  오나가나 청소부터 하고 밥해서 먹여야 하는 의무에서 놓여날 수가 없었다. 


다행한 점은 내가 그렇게 깔끔하거나 청결 벽이 없으니 망정이지, 정말 제대로 살림을 하자고 들면 두 집 살림 건사하는 건 직장으로 치면 초과 근무에 휴일 근무가 추가되는 것과 맞먹는다. 


시골집은  시골집 대로 여름엔 문을 닫아놓고 집을 비워도 며칠 뒤에 가보면 벌레가 죽어서 바닥에 깔려 있는 걸 종종 본다. 


또 나방이 밤마다 어찌나 설쳐대는지 창틀마다 크고 작은 날벌레가 쌓여 있어서 그걸 찬바람이 불고서야 닦는 정도의 인내심이 있어야 시골집에서 살 수 있다. 


직장 다니는 것보다 살림하는 걸 좋아했던 나도 두 집 살림은 오래 할 것은 못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시골집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적막한 고요 속에 창 너머로 보이는 산자락을 보면 마음이 푹 가라앉으면서 푸근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서울에선 맡을 수 없는 신선한 공기와 아침 저녁의 청명한 기운은 정말 매력적이다.   


올해엔 아예 시골집에 계속 머무는 방법으로 두 집 살림이 아닌 한 집 살림에 충실해보려는데 나만 쳐다보고 있는 가족들을 냉정하게 떨칠 수  있을지 그것이 자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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