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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an 05. 2016

내게 사전이 정말 필요했을까?

90년대 초에 첫 발령을 받아 울산의 어느 바닷가 중학교에서 근무를 할 때였다.


학교로 찾아온 외판사원이었는지, 집으로 찾아온 사람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남자는 나에게 <동아 원색 대백과사전>을 할인해서 팔고 있으니 사라고 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 혼수 필수품이라는 말로 꼬드기는 바람에 60만 원이나 하는 전집을 덜컥 사들이고 말았다.


당시 나의 월급이 백만 원이 될까 말까 했으니 정말 큰 마음먹고 샀다.


더 미안한 일은 같이 근무하던 동료에게도 권해서 함께 샀던 것이다.


그 동료는 과학 교사였는데 앞으로 컴퓨터와 인터넷 세상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도 왜 나의 지각없는 구매에 동참했는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결국 그것은 냄비 받침 따위의 용도로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우리 집에 쌓여 있다.


나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는 그것이 처음이 아니다.


대학 다닐 때는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정치학大사전>을 사기도 했다.


일주일은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었는데 정치학에 아무 관심도 없었지만 과사무실에 비치되어 있는 그것을 공부에 열심인 선배가 꺼내 읽는 것을 보고는 아무 생각 없이 서점에서 그 커다란 걸 사서 껴안고 왔다.


그 이후로 한 번도 그걸 펼쳐본 적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친정집 책장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색이 바랜 채  지난날의 나를 비웃듯이 버티고 있다.

 

내가 좀 엉뚱하고 실속이 없는 편이긴 해도 저 정도인지는 나도 몰랐다.


건강을 위한 것이든, 패션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턱없는 지적 허영을 위한 것이든 아마도 사람들이 가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저런 짓을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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