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달하고 씩씩한 덕선이처럼 나도 둘째 딸이 가지고 있는 억척스러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공무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엄마 그리고 딸 셋에 아들 하나인 우리 집은 덕선이네처럼 가난했다.
엄마는 딸들에게 시장에서 똑같은 속옷을 사다 주셨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자기 이름 중의 한 글자를 속옷에 수를 놓아 구별해 입었다.
손재주가 있는 언니는 동그라미가 들어 있는 이름을, 선머슴 같던 나는 직선으로 된 이름을, 여동생은 언니들이 먼저 고르고 남은 이름을 팬티에 색실로 표시했다.
그땐 비 오는 날이 제일 싫었다.
식구 수대로 없던 우산 때문에 내가 잠과 우산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불 속에서 망설이는 사이, 새침하던 언니와 여동생은 일부러 일찍 일어나 그나마 성한 우산을 골라서 가버리고 나면 나는 살이 부러진 우산을 기우뚱하게 쓰고 학교에 가야 했다.
우리 집은 골목의 끝집이었는데 저녁 지을 무렵이면 엄마는 전라도 이웃 아줌마와 함께 시장을 보고 와선 그 집 저녁 메뉴를 우리 집 밥상에도 올리는 방법으로 날마다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셨다.
이제 와서 비결을 여쭤보니 무슨 음식을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신다.
또 우리는 몰랐는데 엄마는 남동생 몫으로 야구르트를 한 개만 배달시켜 그 애에게만 몰래 먹였다고도 고백하신다.
비록 넉넉한 건 꿈 밖에 없던 가난하고 구차한 시절이었지만 오손도손 참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도 덕선이처럼 우리 반 친구의 몹시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준 적이 있었다.
시골에 있는 작은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말이 지극히 없는 한 친구가 배탈이 심하게 났는지 결국 참다가 그만 교실 바닥에 노랗고 동그란 그 무엇인가를 배설해놓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걸 발견한 반 친구들은 순간 난리가 났는데 나는 그때 무슨 마음인지 내가 뭔가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교실 문부터 앞 뒤로 닫아걸게 해서 다른 반 친구들의 과도한 관심을 막았고 움직이지 않으려는 그 친구를 설득해 씻으러 함께 데리고 나왔다.
남아 있는 다른 친구들에겐 교실 바닥의 그것을 해결하라고 해놓고 나는 친구의 손을 잡고 교문 밖에 있는 개울에 데려가 몸을 씻게 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땐 착한 시골 친구들은 교실을 원 상태로 돌려놓았고 그 일은 우리 반 아이들만 아는 걸로 조용히 잘 넘어 갔다.
그런데 그 상황을 처음부터 화단 쪽 창문에서 지켜본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은 가정 선생님이셨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선생님이 나를 무척 칭찬하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 칭찬을 듣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나는 손에 #을 묻히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손을 더럽혀가며 교실 바닥을 치우는 동안 내가 한 일은 그저 그 친구의 깨끗한 손을 잡고 개울로 데려간 것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하란다고 해도 교실 바닥을 맡았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저 나도 남에게 폐 끼치지 않게 되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