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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y 03. 2018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이유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언니의 첫사랑을 삼십 년만에 함께 만났다.


나의 중학교 동문이자 학생회장이던 선배는 우리 언니를 좋아했고 언니는 그 선배를 피해 다녔다. 친정아버지의 팔순 모임을 위해 미국에서 세 번째의 방문길에 오른 언니가 먼저 선배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고 한다. 외향적이고 활발한 나와는 달리 언니는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인데 자신을 좋아했던 첫사랑을 찾은 건 의외였다.


비 오는 어제저녁, 방배동의 레스토랑은 어떤 단체의 임원으로 있는 선배의 단골집인 듯했다. 점심에도 직원들의 생일 모임을 여기서 했다면서 말끔한 모습의 선배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먼저 도착한 우리 자매는 창가의 예약석으로 안내되어 시간에 맞춰 들어온 선배와 함께 적당히 맛있는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먹으며 삼십 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가 오기 전에 언니와 메뉴판을 보며 나는 코스 요리를 먹겠다고 했고 언니는 그러면 다시는 안 데리고 올 거라며 파스타를 시키라고 했다.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세월의 흔적이 남아서 팍 늙은 언니나 나를 보고 실망한 선배가 스테이크를 안 사주면 파스타를 먹겠다고 언니에게 말했다.


삼십 년 전, 내가 대학생 새내기일 때 선배가 나를 불러내어 커피를 사주면서 언니에게 자신의 얘기를 좀 잘 해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같은 S대의 철학과에 다닌다던 선배의 친구가 무심한 듯 내게 던진 한 마디 때문에 기분이 상한 나는 언니에게 선배를 만났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교양철학의 책을 삼 분의 일도 이해를 못 하겠다는 내 말이 끝나자 선배의 친구가 "나는 철학의 백분의 일도 이해를 못 하겠던데.."라고  했다. 무척이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것 같았으나 그때는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내 말을 비꼬는 줄로만 알았다. 그 친구분이 지금은 무얼 하고 지내시냐고 물었더니 변호사인 아내 덕에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으로 여기저기 유랑하며 편하게 지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낮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한 언니는 옆모습이 무척 예뻐 보였다. 나의 첫사랑을 만나는 것도 아니면서 지레 흥분한 내가 눈을 반짝이며 선배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언니는 여전히 차분하고 고운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젊은 시절에 주요 일간지의 사회 정치부 기자로 근무하던 선배는 비판적인 기사를 썼던 것 같았다. 어쩌면 그런 선배의 성향에 언니처럼 말없고 차분한 여성이 이상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았다. 선배는 복학한 이후에도 언니를 찾아다닐 정도로 진지했는데 나는 왜 언니가 그렇게 특별했냐고 물었더니 언니는 그걸 직접 물어보면 어떡하냐고 약간 화를 내었다. 주책스럽게 나는 내 첫사랑은 "너니까"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선배도 그 이상의 답을 내놓진 못하겠다고 하면서 그냥 언니가 좋았다는 고백을 삼십 년만에 했다.


헤어지면서 언니는 미국식으로 허그를 하니까 그런 인사가 익숙지 않은 선배는 몹시 어색해하면서 허허 웃었다. 예전에 암 카페에 < 세 자매의 첫사랑 >이라는 글을 썼는데 우리 세 자매의 첫사랑은 모두 '진지한 남자'들로 지금의 선배와 비슷다. 너무 진지해서 부담스러웠던 자매들은 또한 첫사랑을 모두 거절한 걸로도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마치 내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기대에 차서 그 자리에 나갔던 것이다. 만나보니 세상을 바꾸려고 패기에 넘치던 선배는 이제 사회생활의 달인이 되어 유창하고 부드러운 화술의 소유자가 되었고 치열했던 기자를 그만두면서 매사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멋진 중년으로 변해 있었다.


언니는 자신이 왜 첫사랑을 만나려고 했냐면 더이상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머나먼 미국에서 그리움에 젖어 살고 싶지 않은 언니가 어쩐지 가여워지는 순간이었다.


말수 적은 언니를 대신해서 대화가 끊길 때마다 적당히 수다를 늘어놓으며 나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자제를 했으나 역시 나는 말이 너무 많았다. 일부러 화장실에서 오래 손을 씻으며 두 사람의 시간을 주려고 노력했고 내가 아는 첫사랑에 관련된 농담을 날리며 웃음기 적은 선배와 언니를 웃겼다.


첫사랑이 잘 살면 배가 아프고, 첫사랑이 못 살면 가슴이 아프고, 첫사랑이 같이 살자고 하면 어디가 아플까?




골치가 아프다!



<세 자매의 첫사랑>


사랑에 세련되지도, 능란하지도 않은 그 이름.

첫사랑


청순가련형의 내 언니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말이 없는 언니는 긴 갈색 머리를 늘어뜨리고 가만히 있으면 그 분위기에 넘어가는 남자들이 많았다.

언니의 첫사랑은 우리 중학교의 선배였다.

학생 회장을 했던 그 선배는 S대 사회학과에 들어갔는데 싫다는 언니를 한동안 따라다녔다.

신입생이던 나를 마산 창동으로 불러내서는 언니에게 말 좀 잘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때같이 왔던 철학과 남자가 재수 없어서 나는 커피만 얻어마시곤 언니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내가 철학책의 삼분의 일도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하니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그 대학생은 "나는 백분의 일도 이해를 못하겠던데" 이렇게 답을 해서 나를 한정 없이 무안하게 했다.


여동생의 첫사랑은 교회 오빠였다.

진지하고 어색하며 투박하기만 했던 그 교회 오빠와 찬송가 반주를 했던 여동생은 몇 년간 서툰 첫사랑으로 만났다.

나의 첫사랑도 진지하기로 하자면 앞의 두 남자를 능가하지 싶다.

나는 그 애 앞에서는 밥을 먹지도, 화장실도, 코를 풀지도 못 했다.

겨울이면 추운 거리를 걷다가 식당으로 들어가면 콧물이 나왔는데 훌쩍거리기만 할 뿐 휴지로 팽 풀 수가 없었다.

김밥이 크게 썰어져 나와서 한 입 터지게 먹어야 했을 때 나는 그걸 하나도 못 먹었다.

화장실 간다는 말이 부끄러워 끝내 참다가 집으로 뛰어 들어와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 진지한 남자는 딱 질색이었다.

난처한 상황도 농담으로 슬쩍 넘어가는 편안한 남자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언니도 여동생도 진지하고 서툴기만 한 첫사랑에게는 매력을 못 느꼈는지 어설픈 만남을 이어가다가 결국 다 흐지부지되었다.


언니는 아름다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첫 결혼부터 단추가 잘 못 채워졌고 여동생은 제 말로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데 왜 삶 자체가 고뇌인 제부 같은 남자에게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엄마와 궁합을 보러 갔을 때 이 남자를 보내면 훨씬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난다고 족집게 그 양반이 장담을 했는데도 왜 그때 마음을 고쳐먹지 않았는지, 엄마는 나만큼은 부잣집에 시집보내고 싶었다면서 왜 때려서라도 말리지 않았는지 참으로 원망스럽다!


나보다 옷이 더 많은 남편은 철이 바뀌면 옷이 없다고 징징거린다.

어제도 십 년 넘게 단골로 다니는 백화점의 한 남성복 코너에서 남편의 새 여름 재킷을 사주었다.

마누라는 이 여름에 벗고 다니는지 입고 다니는지도 모르고 새 옷만 찾는 남편이 얼마나 얄미운지 잊고 있던 첫사랑마저 생각나는 오늘이다.                                                                                          -2015년 7월 10일






하루 종일 변변히 먹은 것도 없이 갔으나 위가 없으니 한우 업진살 스테이크의 절반을 남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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