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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y 11. 2018

5월은 모종의 달

부자가 된 기분을 느끼고 싶으면 시골 장터에서 모종을 사면 된다. 요즘 하나에 250원 비싸야 500원 하는 온갖 모종들이 물기를 촉촉이 머금고 길가에 나앉아 있다. 흑토마토 같은 건 모종 하나에 천 원을 받기도 한다. 전원주택의 텃밭에 심을 거라 세 개 아니면 다섯 개씩 모종을 사야 하니 이럴 땐 이웃과 함께 사서 나누는 것이 좋다. 고추 세 개, 오이 세 개, 가지 세 개, 방울토마토 세 개, 오이 고추 세 개, 큰 토마토 세 개 이렇게 사서 모종값은 다 해봐야 오천 원 남짓이었는데 상자에 담고 오는 마음은 이걸 키워서 많은 열매를 딸 생각에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된 기분이다.



나의 비결은 모종이 튼튼해질 액비(액체비료)를 주는 것이다. 쌀뜨물에 흑설탕과 김칫국물을 섞어 발효시킨 액비, 달걀 껍데기를 식초에 담근 난각칼슘 액비, 오줌을 삭힌 질소 액비를 물과 희석해서 모종에 몇 번 뿌려주면 아주 튼실하게 자라서 퇴비까지 가끔 웃거름으로 보태주면 실한 열매를 딸 수 있다.



옥수수와 땅콩은 알갱이를 직파하기도 하고 집에서 싹을 발아시켜 모종으로도 심어놨다. 농부로 해마다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가는 중이라서 작년에 수확한 옥수수와 땅콩 씨앗으로 모종을 만들 줄도 알게 되었다. 시장에서 모종을 사서 심으면 기다릴 필요도 없이 쑥쑥 자라는 것만 보면 되는데 씨앗을 포트에 심어 싹이 나길 기다리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삼 주 정도를 기다려야만 싹이 나오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에 '얘가 죽었나? 살았나?' 애가 타서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되어야 초록색 싹이 여린 모습으로 올라온다.   



땅콩의 발아-시골은 고물도 버릴 게 없다. 김치냉장고 안의 바구니도 다 쓸모가 있다.


밭에 심어놓으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씨앗을 심고 한 달쯤 잊고 있으면 비가 흠뻑 내린 다음 날, 싹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민다. 그새 호기심을 못 참고 땅을 파서 확인해보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밭에는 감자 이파리가 날마다 왕성한 기세로 자라고 있다. 곧 하얀 감자꽃이 피고 꽃이 지면 땅 속에서 감자가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쌈채소 역시 부지런히 크고 있어서 곧 마당에 앉아 쌈 싸 먹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작년에는 극심한 봄 가뭄으로 모종들이 연달아 말라죽었는데 올해는 주말마다 비가 와줘서 순조롭게 크고 있다.



몇 해동안 밭작물을 키워봤으니 이제는 꽃 작물이다. 남편이 애를 써서 뒷마당의 화단 테두리를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작은 돌로 경계를 쌓았으나 이웃들의 성화로 큰 돌로 다시 바꾸었다. 화단의 흙도 좀 더 채우고 돌을 큼직한 것으로 보기 좋게 쌓아놔야 꽃을 나누어 주겠다니 무거운 돌을 가져다 다시 쌓는 수고를 할 수밖에 없다. 안목이 남다른 이웃을 두면 게으른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부지런해지는 모양이다.



돌은 생각보다 무겁다.

미선나무와 수서 해당화 나무를 얻어다 담 밑에 잘 심어놨다. 아직 꽃을 더 심어야 빈 공간이 다 채워지지만 천천히 조금씩 해나가기로 했다. 꽃씨를 사서 심어볼 요량으로 월동이 되는 야생화 위주로 주문했더니 오늘 도착했다. 예쁜 것들은 더 까다로워서 키우기가 훨씬 힘들어 실패할 확률이 높고 기다림의 시간도 곱절이나 길지만 예쁘니까 용서해주는 걸로 한다.



오늘 도착한 꽃씨


꽃은 다 예쁘지만 집주인의 눈에 좋아 보이는 꽃 위주로 심으면 된다. 나는 흰색과 보라색의 꽃이 특히 예쁘게 보인다. 꽃송이가 작고 무더기로 피면 더 예쁘지만 그런 꽃은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수국이 화단에 있으나 직접 키워서 꽃을 보기가 무척 어렵다. 꽃 특성을 몰라서 음지에서 잘 자라는 앵초를 볕에 심은 적도 있고 꽃이 피는 시기와 심는 시기를 모르니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이웃의 가르침을 받아가며 하나씩 배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기다림과 정성은 예쁜 꽃을 보기 위해 바쳐야 할 기본에다가 약간의 지식까지 쌓아야 멋진 꽃밭을 가질 수 있다. 봄 동안 정원에서 예쁨을 받았던 튤립은 꽃이 지자 꽃대를 잘라주어야 했고 장마가 오기 전에 구근을 캐서 망에 넣어 잘 보관했다가 늦가을에 다시 심어야 이듬해 봄에 다시 어여쁜 자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튤립을 우리 집에 심어 준 이웃 언니는 "예쁜 걸 보는 게 쉬운 줄 알아?"라고 말했다.


자고로 예쁜 건 어려운 법입니다.      



으아~감탄이 나오는 큰꽃으아리


남편의 지인이 나 없는 동안 시골집에서 자고 가면서 길가에서 거실이 들여다보인다고 목재 화분을 세 개나 만들어 보내주었다. 일년초의 예쁜 꽃을 부지런히 심어서 항상 화사한 꽃으로 장식해야만 하는 목재 화분은 게으른 우리 부부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저기다가 도대체 뭘 심어야 할지 보내준 성의는 고맙지만 꽃이름을 검색할 수록 머리속은 더 복잡해지고 길가나 공원에 있는 화분만 보면 무슨 꽃을 심었나 뚫어져라 쳐다보고 꽃을 만져보기까지 했다.  


야무진 솜씨로 만들어보낸 정성이 보인다.


'저 목재 화분은 나를 꽃에 대해 공부하게 하고 정원사로 발전시키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야.'라고 날마다 주문을 외우는 중이다. 공부하려니까 어쩐지 스트레스가 조금 쌓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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