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살림을 배울 때부터 잘못 배웠다. 칠순의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출근하며 아기까지 키우자니 뭐든 빨리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기 때문에 나는 안 그래도 급한 성격인 데다 번갯불에 콩을 볶는 경지까지 올랐다. 퇴근하면 옷도 벗지 못하고 가스레인지 손잡이 두 개를 동시에 비틀어 켜면서 저녁 준비를 이십 분만에 해내어 시어머니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시어머니는 나처럼 성격이 불같아서 굼뜬 걸못 보시는 분이라 빠르게 하는 나의 살림 솜씨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꽁지에 불이 붙은 닭처럼 푸드덕거리면서 집안일과 직장일을 하니 귀가 윙윙 울리고 등줄기가 욱신거렸지만 잘 한다는 칭찬에 힘든 줄도 모르고 해도 해도 끝나지 않던 일들을 열불 나게 하면서 살았다.
그렇게 살림을 배웠고 그 후로도 이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집안일을 돌보느라 여전히 빨리 하다 보니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일이 몸에 척척 붙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직장 동료의 집에 가보면 그릇이나 이불 등 살림살이를 제대로 갖춰 놓고 사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으니 일단 관심이 없고 살림을 매만지고 있을 여유도 없거니와 쇼핑을 해도 입고 나갈 옷이나 핸드백이 더 중요했기에 다들 나처럼 짝이 안 맞는 그릇과 세트가 아닌 이불을 대충 덮고 살았다. 나는 집안일을 좋아하기라도 했지만 동료들은 집들이보다는 개학이 낫다며 손님 초대를 무엇보다 무서워했다.
음식은 맛만 있으면 되고 인테리어는 청소하기 편한 게 제일이라는 신조로 여태껏 살아왔는데 뜻하지 않게 전업주부의 대열에 껴보니 이건 직장 업무보다 더 난감한 세계가 펼쳐졌다. 그릇, 인테리어, 수납, 요리, 손바느질, 화초 가꾸기 등 각 분야의 고수들은 지천으로 널렸고 그들의 눈으로 본 나의 살림은 살림이라고 차마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걸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으니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바꾸기는 불가능하고 그저 겸손한 척 모자란 척 살 수밖에 없다.
접시가 그렇게 비싼 게 많고 찻잔이 그토록 화려한 게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손님을 초대하면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을 사람 수에 맞게 통일해서 차려내고 아름다운 장식을 하는 줄도 몰랐다. 나에게 그릇이란 먹고 나서 바로 뚜껑 닫아 넣을 수 있는 투명한 밀폐용기가 최선일뿐, 어쩌다 손님이 와도 제대로 된 그릇은 가지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먼지 앉는 게 무서워서 장식품을 두지 않고 살았는데 잡동사니를 싹 치우고 아예 아무것도 놓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손바느질로 직접 만든 작품이 주는 아기자기함은 비싼 명품보다 훨씬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이런 걸 보신 적이 있나요? 말린 연밥 속에 손으로 일일이 끼워 만든 작품을 선물받았답니다.
은퇴하고 와서 양평의 전원주택에 사는 주부들은 나 따위 허접한 솜씨는 비교가 안 되게 살림의 고수들이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내공을 쌓고 와서 그런지(외국에서 지내다 온 분들도 많다.) 모든 게 똑 부러지고 못 하는 게 없는 실력들을 뽐낸다. 살며시 한숨이 나오지만 어쩔 것인가! 따라 하려야 할 수도 없고 그저 감탄을 보내는 걸로 나의 맡은 소임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 공부를 매우 잘 하던 분들 이어서 모범생 특유의 성실 근면함이 몸에 밴 것인지 대충 하는 법이 없이 완벽하고 깔끔하게 집 안팎의 일을 한다. 여기서 또 한 번 한숨!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으로는 나이도 젊은 축에 들고 가진 것도 없는 우리 부부는 내세울 것이 없다. 잘 하는 것도 없다. 텃밭과 정원을 가꾸고 사는 모습이나 집안 살림이나 그들과 비교하자면 부족한 것 투성이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웃으며 대화에 맞장구치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다. 뭘 잘 모를 때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밥도 자주 해서 먹였는데 그럴듯한 그릇도 없고 대접할 만한 요리 실력도 없다는 걸 알게 되어 이젠 누굴 오라고 부르지도 못하겠다. 시골 살림이 그렇지 뭐 별게 있을까마는 요즘은 너나없이 사람들의 안목이 높아져서 큰일이다!
이젠 빨리 한다고 칭찬해주시던 시어머니도 안 계시고 분초를 다투며 시간에 쫓길 일도 없는데 습관이 되어버린 대충하는 솜씨로는 어디 가서 전업주부라고 말도 못 꺼낼 처지가 되어버렸다.
성격은 여전히 급해서 어제 둘째 딸이 갑자기 내리는 황사비를 피하려 비닐우산을 쓰고 현관으로 들어오길래 다짜고짜 "또 우산을 산 거야?"라고 묻고는 둘째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아이구 내가 못 살아!"이러면서 펄펄 뛰었다. 둘째는 "그게 아니라 아르바이트하는 매장 창고에 있던 걸 쓰고 왔어."라고 대답해서 식구들이 빵 터지며 나를 비웃었다.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집에 넘쳐나는 게 비닐우산인데 산 게 아니라니 안심이 되어 소파에 엎어져서 한참 동안 웃었다. 웃다 보니 암에 걸리고도 바꾸지 못한 내 성격이 나도 기가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