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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Oct 02. 2018

두 집 살림 어렵지 않아요.

전원생활과 도시 생활을 함께 누리는 방법

2015년 3월에 셋집을 얻어 양평으로 이삿짐을 날랐다. 승용차로 살림살이를 세 번 정도 옮기고 냉장고, 세탁기, 티브이 등 가전제품을 사서 배송을 하고 일인용 침대와 볼륨감이 적은 소파를 샀다. 나 혼자 지내려고 시작하다 보니 최소한의 살림을 준비했고 서울 집의 넘치는 세간을 나누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4년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했다. 셋집에서 2년 정도 지내다가 내 집을 짓고 농사에서도 초보 티를 벗어나 모종이라든지 거름에 대해서 제법 긴 시간 토론할 수 있는 경력을 쌓았다.


집을 짓기 전에 세를 얻어 살던 집이다.



내가 그렇게 평생의 꿈을 이루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남편은 자신의 새 차와 비싼 옷을 포기해야 했다. 주말이면 백화점에서 철마다 옷을 사들이고 십 년이 지나기가 바쁘게 새 차로 갈아타던 남편은 이제 입던 옷이 낡으면 아렛에서 이월 상품인 옷과 구두를 사게 되었다. 타고 싶어 하던 드림카는 말 그대로 꿈으로 남게 되었기에 나 때문에 자신의 희망을 미루게 된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두 집 살이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때문에 생활비는 주로 식비 위주로만 소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말이면 정성껏 가꾼 전원주택에서 나무와 꽃을 심고 잔디를 다듬는 생활이 남편의 불평을 잠재우기에 충분했으니 내가 사다 주는 싼 옷에도 별 불만 없이 입고 다닌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샀던 옷이 위암 수술을 하고 살이 십 키로 이상 빠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옷 한두 벌 살 돈이면 멋진 그릇 세트를 살 수 있었는데 왜 안 사놨는지 분통이 터지지만 그때는 집에 있는 시간이 없었기에 그릇 욕심이 없었다. 첫째가 월급을 타서 생활비를 내놨기에 사고 싶던 반찬 그릇을 몇 개 사는 걸로 만족했다.


딸들이 말하길 친구들은 엄마의 명품백을 들고 나오기도 하는데 우리 엄마는 에코백이나 메고 다닌다며 동정해 마지않는다. 나를 닮아 기분파인 첫째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식구들을 일등석에 태우고 해외여행을 갈 거라며 커다란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말만 들어도 탄 거나 마찬가지인 건 기분 탓인 걸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차를 타는 것과 멋진 옷을 폼나게 입고 다니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우리 부부는 여기저기 긁힌 차와 싸구려 옷을 입고도 무척 행복하다. 이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농사에 필요한 넉넉한 거름과 고르게 오는 비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것뿐이다. 심어놓은 나무가 추위에도 얼지 않고 잘 자라기를 바라고 꽃들이 해마다 번지는 걸 바라보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 되었다. 다행히 마당과 텃밭이 아담해서 허약한 남편과 내가 힘을 합하여 돌보기에 적당하다.


내 주변에도 퇴직한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 시골에 집을 짓고 이웃하며 지내자고 열심히 권하지만 대답은 한결같이 시큰둥하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수 있는데 굳이 한 곳에 정착할 필요가 있냐고 하고, 시골에 집을 지었다가 자주 가지 못하면 애물단지가 된다며 그런 집을 많이 봤다고까지 하면서 김을 뺀다. 시골 출신은 농사일이 지긋지긋해서 싫다고 하고 도시 출신은 벌레와 풀이 무서워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식이다. 친한 사람이 한 동네에 와서 살면 언제든지 커피 마시러 가기도 하고 수다도 떨며 적막한 시골 생활에 커다란 재미가 있겠건만 어찌 그리도 요리조리 핑계를 대면서 피하기만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최근에는 예전 동료가 우리 동네에 적당한 땅을 알아봐 달라고 해서 우리 집의 옆 땅을 권했더니 비싸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볕이 잘 들고 돌담을 빙 둘러 남북으로 길게 난 땅이어서 나무랄 데 없으니 값은 당연히 다른 곳보다 비싸긴 하다.


우리 부부가 실패 없이 시골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발품을 팔아 좋은 땅을 많이 살펴보러 다녔고, 암 카페 회원이 먼저 살아보고 추천해준 동네에 땅을 산 후에 바로 집을 짓지 않고 세를 살면서 집을 지어줄 좋은 건축가를 오랜 시간 찾아다닌 점이다. 예산이 빠듯했기에 외장재에 돈을 들이지 않고 대신 설계를 믿을 만한 분에게 맡긴 것이 가장 잘 한 일이 되었다. 건축 시공은 남편의 직업이었기에 주말마다 와서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었다. 시간이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나는 무엇보다 전원생활을 해보라고 주변에 권하고 다닌다. 도시의 소음과 공해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며 계절마다 자연이 주는 청량한 즐거움은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아파트에서 살 때는 미처 몰랐는데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다 보면 답답한 실내에서만 지내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진다.


뒷뜰에서 찬란한 햇볕에 말라가는 빨래

남편은 몇 년 뒤가 될 지 모르지만 은퇴를 해도 시골에 정착할 생각은 없고 3도 4촌 (일주일에 사흘은 도시에서, 나흘은 시골에서 지낸다는)의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월화수요일은 도시에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지내고 목금토일은 시골에서 지내며 지금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야 덜 지루할 것이라고 한다. 남편이 은퇴하면 집안일 중 청소, 쓰레기, 설거지를 책임지기로 했으니 그렇게 한다면 나는 상관없다고 해뒀다. 두 집 살림을 하느라 바쁜 건 순전히 내 일이었기 때문에 남편이 거들기만 한다면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 집을 조그맣게 줄이고 내가 다시 운전을 한다면 나이 들어서까지도 도시의 편리와 시골의 자연을 동시에 누리면서 심심하지 않게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 딸들은 시골에 와도 흙에서 놀기보다는 집안에서 주로 지내며 심심하다는 말을 달고 있기에 잘 오려고 하지 않는다. 밭에서 나는 농작물에도 별 감흥이 없어서 토마토, 가지, 고추, 오이, 호박, 상추, 깻잎, 감자, 옥수수, 고구마, 땅콩을 잘 먹지 않는다. 하긴 밭을 갈고 심고 물 주고 풀 뽑아 키운 사람이나 애지중지하며 감격스러워하지 벌레가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것들을 싫어할 법도 하다. 나는 옥수수를 따서 안고 들어왔다가 옷 속으로 들어온 애벌레에게 물리기도 했다.


옥수수는 불 때면서 따러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따서 바로 삶아야 맛있다,


양평은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진 만큼 오가는 길의 풍광이 좋아서 남편과 나는 시골의 주변 이웃 이야기에서부터 애들 얘기까지 주로 운전하는 이 시간에 밀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막히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시골집까지 한 시간이면 가기 때문에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 휴가나 명절 같은 연휴에도 어디 멀리 여행가지 않아도 되니 시골집이 있다는 것은 인생에 특별한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멋진 차를 타고 근사한 옷을 입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울통 불퉁한 시골길은 차를 긁고 농사일은 흙투성이가 되기 일쑤이니 사실 별로 필요하진 않다.


도시와 시골의 재미를 둘 다 누리며 살다 보면 살림도 두 배로 필요하고 비용도 두 배로 들지만 사는 즐거움 역시 몇 배로 누릴 수 있다. 사람 사는 일에 오가며 오죽이나 짐은 많고 치울 일과 밥 해먹을 일이 많은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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