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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Dec 03. 2018

지팡이만큼 긴 가지가 있었다.

작년에 일반 가지보다 몇 배나 긴 가지를 얻었다. 텃밭 농사를 잘 짓는 이웃이 주었는데 그걸 다른 이웃집에 나눠준 것이 화근이었다. 가지를 길게 키운 이웃의 밭은 무척 기름지다. 비결은 동네 길냥이들의 급식소인 그 집으로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밭에다 똥을 누고 살짝 덮어놓는다. 밭 가장자리에 있는 커다란 밤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져 부엽토로 썩고 보일러를 놓지 않아 난로로만 난방을 하는 터라 참나무 재가 겨울 동안 밭에 뿌려져 유난히 작물이 잘 자라는 이웃 텃밭이다.


놀랄 만큼 긴 가지를 나만 먹기에 많아서 다른 이웃집에 나눠주었더니 농사를 몇 년이나 지어본 그 이웃이 하는 말이 화학비료를 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가지가 잘 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내가 알기로는 기름진 밭이 비결인데 (나중에 밝혀졌지만 긴 가지의 품종이 따로 있다고 한다.) 하도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해서 나는 가지를 준 집에 혹시 화학비료를 썼는지 물어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시골에 살면서 농사를 좀 지어본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경험에서 우러난 비법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텃밭을 가꾼다. 게다가 식구들이 먹을 정도로만 짓는 농사라서 농약이나 비료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기본인데 거기다 대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는 이렇게 키울 수가 없다는 말을 전해버렸으니 자존심이 상한 그 이웃은 앞으로 나에게 농작물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욱이나 근대 같은 잎채소도 반들반들 윤이 나게 잘 키우는 집인데 나의 사려 깊지 못한 언행으로 기름진 그 이웃의 농작물을 구경도 못 해보게 되었다. 식구들에게 이런 사연을 말하니 모두가 입을 모아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 예민한 내용을 중간에서 거르지 못하고 전달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니 기분이 무척 나쁠 것 같다. 그래서 지팡이만큼 길던 가지를 끝으로 아무것도 못 얻어먹었다.


시골 생활이라는 것이 흙에서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도시와 달라서 이웃들과 교류가 없으면 따분하고 심심해서 살기가 어렵다. 우리 집 근처에는 대문을 굳게 닫고 주말에 손님들이 올 때만 열어놓는 집이 있었는데 몇 년 지나자 커다란 집을 비워놓고 다시 도시로 떠나버렸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집이 서너 집은 있어야 어울려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농작물을 주고받기도 하고 꽃이나 나무도 나눠가면서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


지난 주말에는 시골집에서 김장을 했다. 작년처럼 서울에서 김장 양념을 만들어 시골로 가서 그곳으로 배송된 절임배추에 버무리기만 했다. 앞에서 말한 두 이웃집에서 거들어 주러 오고 산새 공방의 손샘도 아침 일찍 우리 집으로 오셔서 야무진 솜씨로 김치통에 차곡차곡 김장을 담아주셨다. 나는 양념 한번 발라보지 못하고 서성대다가 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여동생이 굴과 전복 등을 잔뜩 보내주어서 전복죽을 쑤고 생굴과 보쌈으로 손님 대접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나의 시골 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만약 이처럼 정다운 이웃들이 없었다면 집과 텃밭만으로는 시골 생활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새삼 이웃이 고맙게 생각된다.  


다행히 올해는 김장 김치가 무척 맛있게 되었다.    



  

절임배추 세 상자를 하니 김치통 아홉 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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