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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n 04. 2019

쌈채소를 한 소쿠리 받아왔다.

나로 말하자면 일생 대충 살아온 사람이다. 허허실실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여유작 살아온 세월이었기에 내가 위암에 걸리자 직장의 동료들은 깜짝 놀랐다고. 항상 여유 있는 모습으로 웃으며 업무를 해왔기에 내가 그토록 스트레스받으며 힘들게 근무한 줄 몰랐다고 했다. 백조 겉모습과 다르게 죽도록 저어대는 물갈퀴처럼 내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해내고 싶은 욕심에 몸은 망가졌다.


그냥 인생을 즐기기로 작정하고부터 이젠 정말 즐겁기만 하다. 원래부터 내가 흥이 많긴 했지만 더욱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으로 변하니 사람들이 예전보다 나를 훨씬 좋아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뻔한 표현이지만 위를 잃고 새로운 인생을 얻었다! 말해놓고 보니 정말 진부하다. 사는 게 이토록 재밌는 줄 알게 된 후에 활짝 열린 마음으로 사귄 이웃들이 시골 생활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이웃들은 텃밭 농사의 경험을 일대일로 가르쳐주고 화단의 야생화나 꽃나무도 아낌없이 나누어준다. 그것뿐 아니라 풍성한 농작물을 얻어서 빈약한 우리 텃밭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


쌈채소는 그늘이 적당히 지는 곳에다 심고 물을 자주 주면 식감이 연하고 아삭아삭하다. 땡볕에서 키우면 좀 억세기가 쉽다. 농사를 잘 짓는 이웃이 준 쌈채소 소쿠리는 우리 밭에 달랑 상추 한 가지만 심어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을 보여주었다. 부지런하고 야무진 이웃의 솜씨로 기른 쌈 소쿠리는 정말 감동이어서 평생 대충 살아온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농사를 지어도 되는 대로 하고 마는 나와 달리 꼼꼼하고 철저한 이웃의 농작물은 모양이나 수확량이 확연히 다르다. 물론 나는 주말에 가고 그 이웃은 시골에 살고 계신 분이니 비교할 수는 없지만 평소에 살림하는 솜씨나 농사짓는 걸 보면 쉬지 않고 부지런하여 참으로 존경스럽다.


게으른 데다 기운도 없어서 주로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은 나보다 아마 서너 배쯤 일을 많이 하는 듯한 이웃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을 하도 하다 보니 근력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지금보다 더 일을 열심히 하면 체력이 좀 붙을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우리 부부를 아는 사람들은 농사를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규모를 늘릴 생각을 아예 말라고 입을 모아 충고한다. 남편과 나의 공통된 생각도 골병들 정도로 하지 말자인데 이렇게 감동을 주는 이웃과 함께 시골 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열심을 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하지만 시골 생활이 벌써 5년째인데 아직도  모양인 걸 보면 거름이 적은 모종처럼 싹수가 노랗긴 하다.


마당 가장자리의 잔디를 파내고 흙을 채워 테두리를 만들면 야생화 동산을 만들도록 도와주겠다는 이웃의 권유에도 꿋꿋이 안 하고 버티는 우리 부부다. 이웃은 "꽃밭을 만들면 꽃을 주겠다는데도 안 한단 말이야?" 라며 답답해한다. 말이 좋아 꽃동산이지 보기에 그럴듯한 꽃밭을 만들려면 흙투성이가 되어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제는 대강 감이 오는지라 우리는 결코 일을 벌일 생각이 없다. 그러니 옆에서 아무리 가르쳐줘도 발전이 없다고 구박을 받는 중이다.


옆 밭의 동료 부부는 요즘 텃밭과 사랑에 빠져버려서 집에 가도 밭이 눈에 아른거리고 자나 깨나 심어놓은 농작물 걱정에 비가 오는지 안부를 묻고 생전 처음 해보는 농사가 재밌다며 직장은 가기 싫고 밭에 오고만 싶다고 한다. 몇 년 전에 농사를 처음 시작했던 우리 부부가 얼마 안 되는 작물을 심어 놓고 아무것도 모른 채 순전히 엉터리로 하면서도 마냥 열심이었는데 동료 부부가 지금 그 지경이다. 뜨거운 한낮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잡초를 뽑는 모습이 말려도 소용없다. 몇 주 전에 심어놓은 동료의 고구마가 거의 죽어버려 새로 고구마 모종을 심었는데 고구마 심는 도구를 빌려주고는 다른 일을 하고 왔더니 비스듬히 옆으로 꽂아야 하는 모종을 수직으로 심어놓았다. 감자는 위로, 고구마는 아래로 달리기 때문에 너무 깊이 박힌 고구마를 캐려면 삽질 깨나 해야 할 판이다. 텃밭 일이 끝나자 농사의 명인 준 쌈채소에 삼겹살을 굽고 역시 이웃의 밭에서 잘라온 초벌부추에 방아잎과 통밀가루를 넣어 부친 부추전으로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동료 부부가 정말 맛있게 드셔서 내가 키운 건 아니지만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요즘은 딸기가 제법 굵어져서 텃밭에 물을 주다가 한 알씩 따서 입에 넣으면 딸기향과 새콤달콤한 맛이 진하다. 옆 농장의 어르신이 우리 집의 지하수를 빌려 쓰시면서 앵두가 익으면 한 됫박 따주시기로 했다. 옆 농장의 앵두는 접 붙여서 키운 개량종으로  알이 크고 커다란 나무에 엄청나게 많이 달리며 윤기가 잘잘 흐르는 게 거의 치명적이다.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은 터라 올해는 작년처럼 몰래 새벽 서리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작년에는 콩알만 했는데 거름을 줬더니 딸기가 굵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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