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호박을 세 덩이 땄다. 그중 제일 크고 누런 호박이 상하려고 해서 반을 잘라 죽과 전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었다.
호박죽보다 숟가락으로 속을 긁어 만든 호박전이 입에서 살살 녹아드는 게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단단한 호박 속을 박박 긁다 보면 팔이 아파오지만 그만한 수고를 보답하고도 남는 맛이랄까? 금방 구워 따끈할 때 먹다 보니 사진 한 장을 못 찍었다.
늙은 호박을 반으로 갈라 씨를 긁어낸 후 호박죽 할 건 껍질을 필러로 벗기고 뚝뚝 잘라 삶으면 되고, 호박전은 호박 속부터 숟가락으로 득득 긁어 약간의 소금과 설탕으로 재운 후 물기가 나오면 부침가루를 섞어 부치면 된다. 혀에 감기는 따끈하고 부드러운 맛에 딸들이 좋아하는 티라미수가 부럽지 않다.
마을에서 친하게 지내는 이웃집 네 군데에 나누다 보니 커다란 호박 한 덩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작년에 얻은 맷돌 호박이 달아서 씨를 남겨놨다가 올봄에 심었더니 제대로 맛있는 늙은 호박이 되었다.
내가 직접 농사지어 거둔 것으로 음식을 넉넉하게 만들어 고마운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기쁨이 즐겁다. 따뜻한 호박죽과 전 반죽을 받은 이웃들은 여러 가지로 답례를 했는데 바로 이것들이다.
이웃 언니가 만들어 준 퀼트 가방인데 평상이 지저분해서 종이 박스를 깔고 앉다 보니 이런 사진이 되었다.
새로 사귄 이웃이 이사 오면서 입구에 살짝 금이 간 항아리를 그냥 줬다. 호박죽 한 그릇을 작품과 바꿨다!
건축가이자 산새공방의 유능한 바리스타에게 핸드드립 커피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전동 그라인더와 온도계, 주전자를 선물로 받아왔다.
평상에 놓고 쓰기에 딱 좋은 나무 찻상도 함께 얻었다.
내가 원래 살고 싶은 시골집은 구옥을 개조해서 창호지와 서까래와 대청마루가 있는 집인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동네 카페에서 못 이룬 한을 풀며 일요일 오후를 보내곤 한다. 남편은 헌 집을 고치는 것이 신축보다 더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내게 일러왔다. 열두 살부터 몇 년 동안 살았던 낡은 한옥이 그때는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가장 살고 싶은 집이 되었다.
우리 동네의 카페인 산새 공방에서 구옥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자주 가곤 한다.
가을 햇살과 바람이 약간 쓸쓸하게 느껴지는 시골집에서 마지막 가을걷이에 바쁜 주말을 보내고 왔다. 요즘엔 주인이 통 오지 않는 옆 밭의 미니 사과를 따고 우리 집 텃밭의 주력 작물인 땅콩을 마저 캤다. 올해는 고구마와 땅콩이 마을 전부 흉작이라고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하늘이 주시는 대로 농사 지을 수밖에 없다는 걸 수확할 때마다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