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가 봄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듯이 결혼생활도 여러 고비를 넘기며 위태롭게 이어진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처음에는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덧 중년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고 은퇴하여 서로의 새로운 면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한다. 주위의 부부를 둘러보면 어쩌면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그렇게 서로 안 맞을 수 있는지, 허구한 날 싸우고 비난하느라 조용한 날이 별로 없다.
그것은 남의 일인 줄 알았다. 우리 남편은 온화하고 차분한 사람이라 다혈질인 나와 사는 게 어쩌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가끔 나에게 "당신 그 성질만 좀 죽이면 좋겠다."라고 말하지만 나의 그 성질 덕에 시골에다 집 짓고 사는 줄 알라고 당당하게 맞서는 게 나다. 분주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의 나는 남편을 알뜰히 챙겨주면서 큰 소리를 치고 사는 편이었는데 우리 부부에게도 고비는 가끔 있었다.
이번에 싸운 이유는 경상도식 추어탕 때문이었다. 들깨 향이 걸쭉한 전라도식이 아닌, 담백하고 칼칼한 경상도식 추어탕은 서울에서 먹기 힘든 음식이다. 부산으로 친정 나들이를 간 김에 온천장역 근처에 있는, 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추어탕 집에서 만 원짜리 세 봉지를 친정집으로 포장해와서 하룻밤 얼려 서울 집으로 택배를 보냈다. 차 없이 아이스박스를 우체국까지 들고 가느라 땀이 났다. 그때부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추어탕을 서울서 주문하려면 열 봉지 이상 배달을 시켜야 하고 포장과 배송비까지 물어야 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시켜서 냉동실을 채울 수도 없고 내내 추어탕만 먹을 수도 없거니와 이웃과 또 나눌 수도 없었던 터라 그 애를 써가며 배송을 시키고 서울의 이웃에게 부탁해서 어렵게 냉동실에 넣을 수 있었다.
이미 내 안에는 화가 차있었으니 일주일 만에 본 남편의 얼굴이 반가울 턱이 있을까? 국 없이는 밥을 못 먹는 남편인지라 추워지는 계절이 되니 국 장만에 바짝 신경을 쓰게 되어 남편이 요구하지도 않은 추어탕을 나 혼자 애써 장만해놓고는 싸우고 말았다.
우리 부부는 늘 이런 식이다. 평소에 덤덤하게 지내다 보니 어쩌다 상대를 생각한답시고 하는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가 날 때가 많다. 사람은 하던 방식대로 살아야 탈이 없는 모양이다. 남편이 섭섭해지니 냉전은 시골집에서도 이어졌다. 안 쓰던 황토방에 불을 넣고 나는 따로 잤다. 오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켜지 않을 정도로 재잘거리며 말을 많이 하던 나도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을 좋아하고 끼니마다 밥을 제일로 치며 가장이 출근할 때는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기를 바라고 퇴근할 때는 식구들이 현관까지 나와서 아는 체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우리 남편이다. 내가 앞으로는 거리를 좀 두며 지내겠노라고 아침에 배웅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현관까지 얼마나 된다고 그것조차 할 마음이 안 나는 거냐며 몹시 화를 냈다.
앞집 아줌마의 말로는 우리 남편이 퇴근해오면 "아빠 왔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앞집까지 다 들린다고 한다. 아빠가 퇴근해왔으니 식구들은 모두 나와서 마중을 하라고 시위를 하는 남편은 가부장적이다. 자신이 자랄 때 보고 배운 대로 남편과 아버지 노릇을 하려고 드니 우리 집에서는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낼모레 환갑인 남편의 나이가 말해주듯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 바꾸기에는 늦었다.
말수가 적고 온유하며 상냥하던 남편은 이제 집에서 잔소리 아니면 질문만 하는 꼰대가 되었다. 입맛조차 점점 까다로워져 나는 여러 가지 국을 만드느라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결혼 생활은 다시 한번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물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옛말 하면서 살게 되겠지만 중년이 지나 노년을 준비하는 우리 부부가 서로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화롭게 이어갈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느 집이나 아내와 남편의 성격이 서로 맞지 않고 정반대인 경우가 많은데 남의 집 부부 문제는 진단도 쉽고 해결책도 척척 내놓을 수 있다. 옆집 남편이야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으니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고 부인의 잘못을 사정없이 지적할 수도 있지만 내 문제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가 어렵고 남편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며칠 지나자 화가 저절로 풀려버린 나도 한심하지만 화해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내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남편도 꼴보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