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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Nov 18. 2019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사람의 생각이 때로 변하기 마련이라지만 남편은 새 집을 팔고 헌 집을 사서 고쳐는 건 어떨까 하고 내게 물었다. 시골집은 내 명의로 된, 내 평생 꿈의 집이니 제발 건드리지 말라고 해도 남편의 엉뚱한 발상은 그칠 줄 모른다. 새 집에서 3년 정도 살아봤으니 어지간히 살았고 이 집을 4억에 팔아서 동네의 허름한 집을 2억에 사고 나머지 돈으로는 오피스텔 같은 걸 사서 임대수익을 얻고 싶다는 게 남편의 요지이다. 요즘 남편의 일이 점차 힘들어져 살기가 어려우니 툭하면 시골집을 가지고 이런 소리를 한다.


아파트 건설회사 다녔던 남편은 퇴직 후 관공서의 시설보수일을 하고 있다. 가끔 법원 감정일도 했는데 요즘은 경쟁이 치열해져서 그것도 일이 없고, 크고 작은 공사를 해도 남는 것이 별로 없어서 앓는 소리를 한다. 나는 친정 돈을 꾸어다가 남편에게 필요한 자금을 대고 은행 대출을 받는 등 백방으로 돕지만 최근에는 돈 때문에 싸우게 되었다. 공사 끝난 지가 언젠데 돈을 얼른 돌려주지 않는 남편에게 재촉했더니 나더러 빚쟁이처럼 군다고 하질 않나, 다 돌려주지 않고 얼마간은 통장에 두었으면 했다. 나는 생활비를 아껴서 저금을 하는 능력뿐이라 남편은 궁리 끝에 내가 애지중지하는 시골집을 가지고 온갖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집은 주변 경관과 위치가 좋고 정남향에다 150평이라는 적당한 규모의 땅에 아담한 집과 황토방이 있어서 남편이 자신감을 가지고 저런 말을 할 정도로 시골집으로는 상당한 매력이 있다. 화단과 텃밭 있고 큰 벚나무와 돌담이 정겹다. 그러나 남편의 곤궁한 처지는 이해하지만 지내볼수록 아까운 시골집을 판다는 건 너무 가슴이 아파 차라리 생활비를 줄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생활비가 본격적으로 줄기 전에 부랴부랴 겨울 코트며 안에 입을 경량 패딩 등을 사들이는 짓을 했다. 시골 생활에 심취한 몇 년 동안 완전히 쇼핑을 끊었다가 한번 빗장이 풀리니 이건 도무지 통제가 안 되는 거다. 정신을 차려보니 원피스 세 벌과 겉옷 세 벌, 그리고 스카프 세 개가 옷장에 걸려있다. 직장 다닐 때 주말마다 백화점에서 충동구매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던 습관이 사라진 줄 알았더니 인간의 회귀본능은 이렇게나 끈질기다.


시골집을 지키려면 절약하면서 사는 수밖에 없고 남편의 일을 더 잘 도와주면서 노력해야만 한다. 한때는 재취업을 하려고도 했으나 이 체력을 가지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텃밭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자급자족하며 생활비를 더욱 아끼는 길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어제는 밭에다 이미 늦어버린 월동 시금치 씨앗을 삼천 원어치 사서 뿌려놓고 왔다. 내년 봄에 먹을 비싼 시금치를 밭에서 뽑아 먹기 위해서이다. 마늘과 양파도 심으려고 했으 모종도 철이 지나 팔지 않고 전문 농사꾼이 아니면 실한 결과를 얻기 어려운 작물이라고 해서 포기했다. 내게 숨어 있는 집요한 쇼핑 충동을 누르기 위해서라도 시골집에서 흙 파며 농사를 짓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인 듯하다.


미국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딸이 브런치글을 계속 안 쓰길래 물어봤더니 공모전에 체험 수기를 써서 상금을 노리느라 엄청난 양의 글을 쓰고 있었다. 글 제목을 의논 끝에 '꿈을 향한 나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문장이 순식간에 떠올라 보냈더니 그 제목으로 응모를 했다고 한다. 이미 우승하여 두둑한 상금을 받은 딸이 또 다른 응모를 하는 것인데 잘 되면 상금을 나눠 갖자고 해야겠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이렇듯 구차하게 가족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여동생이 내게 옷 사 입으라고 돈을 보내기도 했고 남동생은 남편 일을 잠시 도와주고 받은 돈을 내게 반쯤 준다고 했다. 며칠 동안 우리 집에서 숙박을 하며 밥을 먹은 대가이다.


남편에게는 "돈이 없어도 살지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며 내가 생각해도 헛웃음 나는 말을 했지만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는 강한 생활력이 내겐 있다. 형제 많은 집에서 가난하게 자란 사람이 갖는 놀라운 적응력이 있기에 저런 말도 감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여동생이 만취하여 집 앞에서 쓰러져도 제부는 말없이 돌봐주고, 그러면 미안해서라도 잘하게 된다는 그녀의 말처럼 옷을 잔뜩 지르고 나니 그제야 남편에 대한 화가 풀려서 마침내 그 잘난 사랑이 회복되었다.    






밭에서 캔 무와 쪽파로 김치를 담갔는데 다행히 맛있다. 저건 알타리 아니고 무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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