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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Dec 17. 2019

뭐든 적당히 좀 하렴!

태생적으로 차분하고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고 나처럼 충동적으로 사는 기분파이거나 성격이 다혈질 또는 즉흥적인 사람은 얼마간 반성이 필요한 글이다. 요즘 내가 사는 일상이 궁금하다며 뭐하느라 브런치 글을 안 쓰고 있는지 묻는(그래 봐야 내 딸 정도 되시겠다.) 독자가 있는 만큼, 하루라도 외출 안 하는 날이 없는 분주한 나의 근황을 밝히고자 한다. 연말이라도 딱히 모임이 있는 건 아닌데 농한기인 겨울에는 서울에서 주로 지내며 주말이면 결혼식에 다니느라 3주째 시골집을 못 가고 있는 형편이다. 11월 말에 다녀온 게 마지막이라 미처 보일러를 외출에 놓고 켜놓지 못하고 왔다. 영하로 떨어지는 새벽에는 배관이 얼어서 터지지나 않는지 애를 태우다가 이웃 언니가 먼저 말을 해주어서 보일러를 켜달라고 부탁했다. 안 어울리게  또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절대 못하니 가끔 사는 게 답답할 때가 있다.  


요즘 대세라는 유튜브에 여섯 번 출연했다. 시골교회에서 만난 동화작가가 패션에 관한 콘텐츠를 만드는데 함께 출연하며 촬영하느라 한동안 세월 가는 줄 잊고 살았다. 파티룩을 찍느라 인조손톱을 난생처음 붙여보고 리넨 옷가게에서 옷을 입어보며 재미있게 촬영했다. 여자라면 관심 있을 동영상이라 반응도 좋았다. 구독자가 늘어야 유튜버에게 구글에서 돈을 지급하니 초라한 인맥이나마 주변에 동영상을 알리며 작가도 돕고 내가 좋아하는 리넨 옷가게도 도와주고 싶어 바쁘게 지냈다. 심지어 암 카페에도 유튜브 링크를 걸었다가 운영진에서 공지사항으로 링크 금지를 알려주었다. 물론 카페 경력이 몇 년인데 그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본문에는 아니고 굳이 궁금하다며 알려달라는 댓글에다 링크를 달았지만 그 역시 금지 사항이다. 암 카페의 오랜 회원으로 깊은 반성의 글을 올리고 당분간 잠수 중이다. 내 흥에 겨워서 천지 분간을 못하고 설치다가 친하게 지내는 카페 운영진에게 폐를 끼치고 보니 나란 인간이 참 한심하게 여겨져서 이렇게 참회하는 중이다.


시골 살이에서 인간관계도 항상 적당히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게 좀 어렵다. 워낙 정이 헤퍼서 잘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푹 빠져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주는 쪽이라 부작용이 가끔 생긴다. 갑자기 빠르게 친해지는 게 위험하고 너무 친해도 피곤한 법인데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게 나에겐 힘들다. 시골에서 만난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일 년만에 돌려받은 일도 있다. 그래서 나를 우리 동네 호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암 투병하는 동안 세웠던 원칙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오직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는 뚜렷한 규칙이 있었는데 조금씩 끌려다니며 마음을 거스르는 일들을 하고 있다. 내 속의 평안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으며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은 하지 않기로 결단하고 잘 실천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주말마다 지방으로 결혼식을 다니느라 등줄기가 욱신거리며 아프고 남 일을 돕는답시고 팔 걷고 나서다가 '나이 들었다는 핑계로 카페 공지를 잘 모르는' 회원으로 낙인 되고 보니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몸이 허약하고 체력이 없으면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남일에 쓸데없는 오지랖을 줄일 수 있다. 완치되고 살만하니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 분별력을 잃고 인간관계에 지나친 집착을 했던 것을 반성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에 끌려다니지 않을 것이고 상대방에게 나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힐 것이며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본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놈의 흥! 내 속의 신명을 그만 죽이고 싶다. 전 세계인이 본다는 유튜브에 남편을 향해 코맹맹이 소리로 "오빵~"을 날린 푼수 짓이 이제는 그만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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