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넓은 전원주택을 지어 파티룸이나 스튜디오로 대여해주고 수익을 얻는 집이 있었다. 전 재산을 쏟아붓고도 모자라 넓디넓은 데크를 손수 만든 집이다. 젊은 부부는 자신들의 염원을 담아 심혈을 기울이고 온갖 정성을 쏟아 집을 완성했지만 2년을 버티다 결국 집을 내놨다.
남편은 단층인데 이층높이의 층고에다 다락에 작은 침실이 하나밖에 없는 그런 집을 누가 가정집으로 들어오겠냐며 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남편의 우려를 비웃듯 몇 달만에 매매가 이루어졌다. 그 집을 사서 들어올 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부부로 은퇴 후 서울 살림을 정리해서 곧 이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결정적으로 높다란 스튜디오가 속이 시원해서 그 집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분들이다. 곧 다가올 추위는 난로를 달아 해결하면 될 것이고 수납할 곳이 부족하니 빈터에 별채를 조그맣게 지어 나머지 살림살이를 보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다른 집은 농가 주택을 전세로 얻어 삼사천 만원을 들여 내부를 모조리 수리하고 사는 집이 있다. 그뿐 아니라 마당에 잔디를 깔고 돌담을 직접 쌓는 등 내 집처럼 가꾸니 집주인은 좋기는 한데 궁금하여 남의 집을 왜 이렇게 공을 들이냐고 물으니 '하루를 살아도 예쁘게 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많은 세입자들을 겪어왔지만 이런 이유를 대는 사람은 처음이라는 게 집주인의 평이었다. 남편에게 내가 들은 대로 사연을 들려주니 "내 집도 아닌 전셋집을 그렇게 고치다니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세입자의 말을 옮기면 건강이 안 좋아 제주부터 강원도까지 삼백 채 정도의 집을 보면서 돌아다니다 우리 동네까지 오게 되었는데 병원비로 쓰는 셈 치고 집을 아름답게 고쳤다고 한다. 이 집을 쓰게 될 다음 사람이 행복하게 살면 좋은 것 아니 나며. 사람이 크게 아파보면 이렇게 인생관이 바뀌게 된다.
남편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상식을 잣대로 뭐든지 판단하려고 드는 것이 슬슬 꼰대의 소질이 보인다. 근검절약이 삶의 유일한 미덕이고 근면 성실 하나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다. 평생 늦잠 한번 못 자고 일 년 열두 달 아침 7시까지 건설 현장으로 출근해오던...(이 부분에서 갑자기 숙연해진다.) 성실한 가장이다. 그런 남편에게 따끈한 아침상을 차려주고 집에 오면 편히 쉬게 하며 휴일엔 늦도록 자게 내버려 둔다. 맞벌이할 때도 이렇게 해왔다. 하지만 입이 유난히 짧아서 금방 한 맛있는 반찬이 아니면 아예 젓가락을 대지 않는 남편 때문에 이젠 화가 나기 시작한다.
남편은 잔머리가 비상해서 말귀도 빨리 알아듣고 눈치도 빨라 말하는 사람을 신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 덕에 나에게서 지금까지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있지만 이제 그것도 약발이 다 되어 가는지 요즘 나이 들어가는 남편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어느새 환갑이 낼모레인 남편은 갈수록 입맛이 까다로워져서 어지간히 맛있지 않고는 두 번 먹는 법이 없고 조금씩 새로 만든 반찬만 집어 먹으니 그걸 지켜보는 내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 같다.
예전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맞장구를 열심히 칠 뿐,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더니 요즘은 "내 상식으로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자신의 잣대를 열심히 흔들어댄다. 세상에는 남편처럼 멋도 여유도 없이 개미처럼 일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오늘 하루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텐데 남편은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시골집이나 땅을 보러 다니는 사람 중엔 어느 한 부분에 꽂혀서 덜컥 계약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설령 값이 비싸고 다른 조건이 안 좋아도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점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결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탁 트인 전망에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아 그 땅이 높거나 서향이라도 감수하게 되고 쓰러져가는 농가주택이라도 느낌이 아늑하면 고쳐서 쓰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남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음식을 하는 아내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 남편의 짧은 입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