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을 떠나고 싶은 순간

by 화이트

벌레

그중에도 커다란 지네가 안방이나 화장실에서 수많은 발을 꿈틀거리고 있을 때 충격적인 모양과 색깔에 식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새끼는 제외하고 대여섯 마리를 발견한 것 같다. 지네에 비하면 그리마는 귀엽다.


모기

집안에는 없는데 밭에만 나가면 아디다스 모기라고 하는 줄무늬 산모기가 떼로 덤빈다. 고추를 잠깐 따려 해도 순식간에 여러 군데를 물리고 밭일한다고 앉으면 바지를 뚫고 양쪽 대퇴부를 수십 방 물려서 몹시 가렵다. 밭에는 모기 말고도 물것은 많다.


잡초

식물이 동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쑥쑥 자란다. 장마가 지나고부터는 손을 놓게 되어 정글이 되거나 말거나 서리 내릴 때까지 포기하게 된다.


농사

더울 때 일하고 있으면 손바닥만 한 텃밭이 천평 농사같이 생각되고 미처 농사를 다 못 짓고 있는 밭을 쳐다보면 이 땅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신대륙 이주민처럼 그냥 바라볼 때가 있다.


추위

추운 게 싫어서 실내가 따뜻할 정도로 기름보일러를 돌리면 기름 줄어드는 게 눈으로 보인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얼음을 섞은 사이다 같은 싸한 바람이 온몸을 싸고돈다.


흙먼지

집 바깥까지 청소해야 한다. 건물 외벽에 거미줄이 있고 가끔 말벌집도 있다. 흙먼지가 많아서 자주 쓸어주고 물로 닦아야 한다. 시골은 게으른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촌 여인이 되는 건 시간문제

바람이 불고 땀이 많이 나는 시골은 멋 내기를 포기해야 한다. 고무신과 밀짚모자로 오일장에 가도 아무렇지 않지만 시골 생활이 몇 년씩 길어지면 가끔 있는 모임이나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다.

겨울에는 누비바지와 털고무신이 최고이고 여름엔 냉장고 바지와 늘어진 면티가 제일 시원하다.


일 하다가 부부싸움

남자와 여자는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꼼꼼한 사람과 급한 사람이 있다 보니 같이 밭일을 하면 꼭 싸우게 된다. 네가 잘하니 내가 잘하니 하면 서로 기분이 상하니 일할 땐 따로 한다.


해지면 마감

시골은 깜깜해서 밤에는 외출이 꺼려진다. 이웃들도 해지고 나면 다들 집에 들어가 버리니 놀 사람이 없다. 긴긴 겨울밤을 어찌 보낼지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한낮의 무료함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한낮에는 지루하다. 도시처럼 가까이 카페도 없고 영화관도 멀다. 책 읽거나 음악 듣거나 바느질이라도 해야 길고 긴 오후가 지나간다.


무엇보다 교통이 불편하고 편의시설도 없는 시골에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좋은 게 시골살이이다. 남편의 친구가 금요일이면 시골로 떠난다는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너는 행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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