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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도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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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Mar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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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뒷베란다에서 욕실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침 일찍 찾아온 도배팀 다섯 명의 동선에 방해가 안되려고 이러는 중이다. 이 집에 이사오던 2005년에 리모델링을 했으나 세월은 흐르고 윗집의 누수까지 더해져 집은 점점 낡아 보였다.
딸들이 자신의 방을 셀프 도배하겠다고 해서 결국 일은 커져 집 전체를 도배하기로 했다. 도배를 이사하면서 해봤지, 살면서 하려니 생각만 해도 뒷골이 달아올랐지만 이미 날짜는 잡혔고 그나마 어젯밤에 잠시 내린 비로 공기가 덜 탁해서 다행이다.
일을 벌인 김에 1995년에 샀던 금성 에어컨을 투인원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그건 1시에서 1시 반 사이에 도착한다고 연락을 받았다. 도배와 에어컨은 우리 집의 숙원사업이라 이 번거로운 하루를 감당하기로 했다.
딸들이 자란 뒤, 둘째는 구름 모양의 천장 벽지와 곰 인형이 그려진 벽지는 너무 한 것 아니냐는 항의를 하고 그 당시엔 당연했던 체리색 문틀은 도대체 왜 그랬냐는 질문을 한다.
나는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지만 실내디자인을 직업으로 하는 딸을 키우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앉아 있
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피곤이 급속히 몰려온다.
실크 벽지에 가려진 첫째 방의 곰팡이 (베란다 확장을 해서 가장 춥고 가장 더운 문제적 방이다.)
거실과 현관의 도배 전 모습 (체리색 문틀은 어쩔 거냐능~)
드디어 도배가 완성되었다. 둘째 방의 창고 안까지 그 많은 옷과 짐을 들어내고 도배를 해 주셔서 냉장고에 있던 마를 우유와 함께 마구 갈아 드리고 홍삼정까지 가시는 길에 꼬옥 쥐어 드렸다.
합지로 하니 고르지 않은 벽과 천장이 실크만큼 가려지진 않는다.
깨끗해진 안방
에어컨과 도배가 한꺼번에 해결되어 누구보다 기뻐하는 첫째의 방이다.
구름 무늬와 곰이 그려진 둘째의 방은 무조건 흰 색이다.
시운전 중인 에어컨 (우리 집도 제습과 예약 취침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분통같이 하얀 벽을 보니 거실과 식탁 조명까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래되어 변색된 스위치와 콘센트까지 싹 바꿔주셔서 새 집이 되었다. 도배팀은 남편과 함께 일했던
분들 이어서 역시 세심하고 꼼꼼하게 살펴주시고 무척 친절하셨다.
기나긴 하루를 보내며 모처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피곤하지만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끝내어 후련하기 그지없다.
딸들이 퇴근하면 기뻐할 생각에 쉬지 않고 정리하고 청소했더니 마치 이사 온 집 같다.
하지만 다시는 살면서 도배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고 나니 입안이 헐어버렸다.
식탁 위에 있던 누런 두꺼비집을 가리고나니 한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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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라이프 분야 크리에이터
"인생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 직장에 다니다 암을 겪고, 은퇴한 뒤 전원 주택을 지어 두 집 살림을 꾸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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