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제비꽃이 밉다.
민들레도 밉다.
by
화이트
Apr 10. 2021
아래로
제비꽃은 이름도 자태도 어여쁜 꽃이다. 삼색제비꽃도 앙증맞고 올해 유난히 극성인 보라색 제비꽃도 예쁠 뿐 아니라 흰색 제비꽃은 더욱 어여쁘다.
도시의 보도블록 틈으로 난 제비꽃
그런데 번식력이 너무 왕성해서 갈 데 안 갈 데 빠짐없이 번져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잔디밭이나 파쇄석이 깔린 주차장에도 제비꽃 천지인데 아침마다 제비꽃을 뽑느라 흙을 후빈다고 내 손가락은 늘 거무튀튀하다.
주차장의 가장자리부터 밀고 들어오는 잡초 때문에 차를 대려고 하면 풀이 먼저 주인을 반긴다. 짐을 내려놓고 잠깐 산 한번 쳐다보며 숨을 고르고 나면 바로 연장을 챙겨 풀을 뽑는 일로 전원생활은 시작된다.
정신없이 풀을 뽑다 보면 내 생전에 권총을 쏜 일도 없는데 손가락은 방아쇠 증후군에 시달리고 반지도 시계도 필요 없는 시골 아낙의 손이 된다.
장마 이후에 힘센 잡초를 뽑다가 손목을 다치고 오십만 원을 들여 치료했다. 그 돈만큼 상추와 고추를 사 먹었다면 아마도 신선이 되었겠지만 무식하게 맨 손으로 뜯지 말고 호미를 잘 사용해야겠다는 교훈만 얻고 말았다.
주차장의 민폐인 하얀 제비꽃과 노란 민들레
봄이 되니 할 일이 갑자기 늘어서 바쁘다. 밭을 뒤집어 거름도 섞고 먼저 감자와 완두콩을 심었다. 쑥갓, 상추, 얼갈이, 열무 씨를 뿌리고 올해는 수세미를 키워보려고 하는데 남편이 높은 지지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지지대를 세운 완두콩
세월이 몇 년 쌓이니 꽃과 나무가 차차 자리를 잡아가는 게 눈에 보인다. 유실수는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며 야생화는 개체수를 부쩍 늘려가서 남에게 나눠줄 정도가 되었다. 풀과 벌레로 시골 생활이 갈수록 힘들지만 잘 자라는 나무와 꽃에게 위안을 얻는다.
석축에서 내려오는 흙을 막으려고 심은 산앵두 (그 뒤의 꽃잔디는 향이 라일락처럼 달콤하다.)
산앵두와 해당화
앵초와 수선화
꼭 다문 튤립
피었다.
이제 또다시 시골 생활이 시작되었다. 풀과 벌레가 같이 살아보겠다고 덤비겠지만 어쩌겠는가? 제비꽃과 민들레를 또 뽑아야 한다.
keyword
제비꽃
민들레
전원생활
25
댓글
2
댓글
2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화이트
라이프 분야 크리에이터
"인생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 직장에 다니다 암을 겪고, 은퇴한 뒤 전원 주택을 지어 두 집 살림을 꾸리는 중입니다.
구독자
1,750
구독
작가의 이전글
살면서 도배라니!
두 집 살림은 돈이 힘들다.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