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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휴가는 시골에서 여름밤을 보내기

by 화이트

더위를 몹시 타는 나는 여름엔 옷을 입는 게 두려울 정도이다. 가장 얇은 천으로 가급적 몸을 덜 가리는 옷을 고르고 골라 여름철을 보낸다. 그런 내게는 시원한 시골집에서 잠을 잘 수 있는 밤이 최고의 휴가이다. 시끄럽고 열대야로 더운 도시를 떠나 선선한 밤을 보낼 수 있는 시골집은 낮이야 아무리 더워도 참을 만하다. 밤이면 창문 사이로 에어컨 바람같이 차고 쾌적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풀벌레와 개구리가 협연을 하는 자연의 소리는 자장가처럼 은은하고 감미롭다.


이런 시골집을 장만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먼저 나의 암 투병이 있었고 남편의 반대가 극심했으며 무엇보다 집을 지을 넉넉한 돈이 없었다. 시공기술사인 남편이 은퇴하면 천천히 집을 지어주겠다는 말에 내가 먼저 건축가를 찾아가 덜컥 계약을 해버려 크게 싸운 일도 여러 번이었다. 가진 돈을 탈탈 터는 바람에 지금까지 여윳돈이 없어 말 그대로 마음의 여유라곤 없다. 그래서 남편이 갖고 싶은 차를 사려니 돈이 턱없이 모자란다. 내년이 환갑인 남편에게 차를 사주려고 모아 두었던 돈은 한동안 남편의 사업이 불황인 탓에 날아가 버리고 이젠 돈이 없다.


그렇지만 시골에 집이 있다는 건 지금으로선 무엇보다 좋은 일이다. 서울의 아파트에는 재택근무가 확정된 첫째가 지내고 있다. 내가 아무리 식사를 챙겨주고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집안일에 매달려도 딸에겐 아무도 없는 집이 더 좋으니 못 이기는 척하고 시골로 왔다. 진작에 올 걸 와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시골집이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조용해서다. 새소리와 매미소리 밖엔 들리는 소리가 없는 적막강산이 귀를 편안하게 한다. 소음이 없다는 게 이렇게 사람에게 소중한지 시골에 와서 알았다. 좋은 공기와 초록색뿐인 풍경이 여기에 더해지니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이 모두 다른 시골의 일상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좋다.


초록 뿐이다.


해가 쨍쨍한 낮에는 심심하니까 청소를 한다. 혼자 있으면 식사는 대충 하게 되고 대신 일은 능률이 오른다. 5년 동안 시골집에 차곡차곡 쌓인 물건들을 모조리 치웠다. 안 쓰는 물건은 다락에 올려놓고 책은 침실로 옮겨서 거실과 주방은 마치 펜션처럼 최소한의 가구만 놓아두려고 했다. 여름휴가가 다가오니 시골집으로 오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넓고 훤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주방에 있는 그릇들 중 안 쓰는 것들은 모두 치웠다. 5~6인까지는 식사할 수 있는 정도의 식기만 남기고 여분은 정리를 했다.


아무 것도 없다.


지글지글 타는 볕이 아까워서 이불도 몽땅 빨았다. 요 커버를 벗기고 속통을 햇볕에 말리니 거둘 때 만지니까 솜이 뜨끈뜨끈하다. 베개솜도 햇볕에 널어 소독을 했다. 속통 커버를 벗긴 이불솜에 나방이 한동안 앉아 있어서 봤더니 보드라운 솜에 알을 낳아놓기도 했다. 알 낳느라 애쓴 보람도 없이 좁쌀보다 작은 알은 바로 제거되었다. 빨랫줄 가득 널어놓은 호청을 거실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뒷마당의 화단에 족제비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인다. 날씬하고 길쭉한 몸에 얼굴은 삼각형으로 조그마하다. 얼핏 귀엽게 생겼지만 성질이 사납다고 한다. 한편 두더지는 텃밭과 화단 밑에 굴을 만들어 말썽꾸러기이다. 이놈을 쫓으려면 낚싯대처럼 휘청거리는 막대기에다 페트병을 꽂아 땅에 심어 수시로 진동을 만들면 된다. 그러면 우리 집 말고 다른 집으로 간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뒷집 개가 우리 잔디밭에 똥을 누고 갔다. 우리 집 뒤로 네 채의 집은 모두 개를 기른다. 그중에 남아공에서 온 아줌마네 개가 아침저녁으로 자유롭게 산책을 하면서 우리 집에 똥을 누니 기분이 나쁘다고 항의해야 하는데 남아공의 그녀가 금발 미녀라 예뻐서 참는다. 절대로 영어가 안돼서 참는 게 아니다. 교수였던 그녀는 키가 크고 아주 예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그녀도 이젠 나처럼 중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다음 주는 더 더울 거라는데 서울의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에어컨이 아무리 새 거라도 자연 바람과 비교할 수 없고 가족이 아무리 소중하나 혼자 있는 시간만큼 좋은 건 없다.


오이 아니고 수세미
시골의 흔한 벽 장식
오전의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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