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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이 지긋지긋하다고!

by 화이트

사실 결혼 생활은 재미있었다. 예쁜 딸 둘에 순한 남편에 직장 생활을 하느라 좀 바쁘고 힘들었을 뿐, 나의 결혼 생활은 썩 만족스러웠다. 단 남편의 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늙은 아버지 대신 자신을 고등학교부터 키워준 형이기에 남편의 마음은 지극하다. 그런 형이 팔순이 넘어 이제 치매가 많이 진행된 상태로 서울에 오셨다.


조카가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하고 자신의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 남편과 시누이까지 불러 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형이 왔으니 당연히 점심 식사 비용은 시누이와 남편이 함께 붓고 있는 곗돈에서 내려고 했다.


잠실의 한 오리구이집에서 4인 코스 요리에 십오 만원으로 네 쌍이 모이니 여덟 명이라 식사비가 삼십만 원이었다. 총무인 내가 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남편은 후식이 나오기 전에 두 번 내 발을 건드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마다 내 전화기에 카톡을 확인한다고 보고 있어서 모임 중에 전화기를 보는 나에게 주의를 주는 줄 알았다.


역시 총무를 맡고 있는 나의 사모임에 시모의 초상이 난 관계로 나는 자꾸 전화기를 열어보게 되었다. 후식을 먹은 뒤에 계산을 하려고 하니 이미 조카가 일어나서 가고 없었다. 옆에 앉은 시누이에게 말하니 조카가 한 번쯤 밥을 사는 것도 괜찮다고 해서 나는 그런 줄 알았다.


남편은 왜 자신이 신호를 보냈는데도 계산을 안 했느냐고 무척 화가 나서 말했다. 나는 핑계랍시고 카톡 보느라 그러지 말라고 하는 줄 알았다고 했는데도 남편은 화가 안 풀려서 또 자신이 두 번이나 사인을 보내지 않았냐고 한다.


마침 엘리베이터에 둘 밖에 안 탔기에 나는 소리를 꽥 질렀다. " 전화기 본다고 주의를 주는 줄 알았다고 몇 번을 얘기해!" 남편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식당 바깥으로 나가더니 주차장 쪽으로 씩씩거리면서 갔다. 나는 나대로 어찌나 열불이 나는지 남편 차를 안 타고 시누이 차를 탔다.


조카 집으로 가면서 시누이에게 남편이 형이라고 하면 평생을 그러더니 지금까지 나를 못 괴롭혀서 야단이라고 혼자 법석을 떨었다. 시집 형제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한 세월이었는데도 남편은 항상 이런 식으로 나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저녁까지 다 먹고 형과 작별을 하고는 집으로 왔다. 남편은 봉투에 차비도 넉넉하게 삼십만 원을 넣고는 내가 드리는 게 자연스럽다고 해서 남편 돈으로 나는 생색만 냈다. 이제 집에 와서 본격적으로 싸울 일만 남았다.


남편은 나에게 분위기 맞춘다고 수고했다고 마음에도 없는 공치사를 했다. 나는 형 때문에 마음 아픈 줄은 알겠지만 꼭 그렇게 내 탓을 해야만 기분이 좀 낫느냐고, 친정아버지가 그러시더니 남편이 안 그래서 선택했는데 갈수록 남 탓하는 아버지를 닮는다고 꼭 짚어 말했다.


막내들은 다 그런지 친정아버지도 일이 잘 안 풀리면 꼭 엄마 탓이나 자식들 탓으로 돌려서 역정을 내어 마음이 늘 안 좋았는데 남편이 내 탓을 하니까 어릴 적 상처까지 되살아나 기분은 더 나빠졌다. 그래서 얼굴을 싸안고 "결혼 생활이 지긋지긋해! 지긋지긋하다고!!"라고 소리치며 마구 머리를 흔들었다.


다음 날 아침, 두통약을 세 번째 먹으려니 남편이 아직도 머리가 아프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안 했다. 출근한 남편은 점심때쯤 긴 사과문을 보내왔다. 진심이 느껴지는 문장이었지만 아직 꽁한 마음이 안 풀려서 답장은 안 했다.


남편에게 진지하게 물어봐야겠다. 나와 살아야 하는 이유 세 가지만 대보라고. 내 생각엔 첫째도 밥, 둘째도 밥, 셋째는 국이 되겠지만


아! 정말이지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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