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하는 자연식물식을 시작한 지 반년이 넘었다. 복합 탄수화물인 현미, 통밀, 고구마를 주로 먹고 식이섬유가 많은 생채소와 나물로 반찬을 해서 끼니마다 풍성하게 식탁을 채웠다. 건강식을 하는 나는 가끔 생선이나 고기를 먹지만 완벽한 채식을 하는 딸을 위해서 머리를 짜내어 새로운 요리를 생각해내곤 한다. 하지만 담백하고 소박해진 딸의 입맛에는 참기름을 넣지 않은 나물 무침도 맛있게 먹기에 딸이 먹는 걸 좋아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냉장고에는 하루 걸러 사다 나르는 푸성귀로 가득하다. 섬초, 콩나물, 무, 연근, 상추, 알배추, 로메인, 숙주나물,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버섯류, 두부, 묵(도토리, 메밀, 청포)이 차례대로 요리되어 밥상에 오른다. 딸이 직접 요리를 할 때도 있고 시간이 많은 내가 후딱 만드는 게 빠르다. 딸은 여름에는 쌈채소를 많이 먹더니 추워지니까 양배추를 삶아서 먹고 곱창김을 즐겨 먹어서 가스불을 무서워하는 딸을 위해 대신 김을 굽는다. 주부의 마음에는 육식을 안 하는 딸이 어쩐지 안쓰러워서 채소 요리를 더 신경 써서 하게 된다.
이렇게 먹기 시작하니 좋은 점이 많다. 생선과 고기 요리를 하지 않으니 집에 비린내 또는 누린내가 안 나서 좋고 나물 위주의 식사를 하고 나면 설거지할 때 기름기가 없어 수월한 점도 포함된다. 남편이나 내가 원래 육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채소 위주의 집밥을 먹어 왔기에 자연식물식을 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 요구하는 대로 싱겁고 기름지지 않게 하려니 입이 짧은 남편이 불만이라서 적당히 타협점을 찾는 것이 가끔 어려웠다.
우리 집의 먹거리에 큰 변화는 간식에서도 나타났다. 가족들이 밖에서 들고 오는 온갖 맛있는 간식들이 이제는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게 되었으니 과자, 빵, 케이크, 초콜릿, 떡 같은 해로운(?) 간식은 서둘러 주변의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진다.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 것들인가! 예전의 나 같으면 누가 뺏어 먹을까 숨겨 놓고 먹었을 것인데 이제는 아무 감흥 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첫째가 워낙 가족들에게 수시로 교육을 시키니 액상과당 중독이던 둘째마저 녹차를 홀짝거리며 식이를 바로잡게 되었다.
정제 탄수화물과 달고 기름진 음식에 길들여진 가족들은 첫째의 지휘 아래 단번에 식단을 바꿨고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가계부를 쓰는 내 입장에서는 고기를 사지 않아도 식비는 오히려 늘어나서 어리둥절할 뿐이다. 겨울이라 비닐하우스에서 기름 써가며 기른 채소 값이라 비싼 건 인정하지만 아침마다 먹는 유기농 사과와 과일, 올 겨울에 열 박스는 더 먹었을 고구마, 한살림에서 구입하는 유기농 현미와 잡곡 그리고 온갖 양념들을 사용해서 날마다 집밥을 만들어내려니 요즘 같은 고물가에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 기도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외식을 하려 해도 비건을 외치는 딸이 먹을 만한 식당이 별로 없고 탄수화물에서 자유롭지 않은 나까지 고려하면 가족이 모두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러니 특별한 기념일에도 외식은 힘들어 그저 집에서 늘 차리던 현미 채식으로 가족끼리 먹곤 한다. 어느 식당을 가도 백미로 된 공깃밥을 주기 때문에 외식이 꺼려지는 터라 집밥이 제일 마음이 편하다.
자연식물식을 하고 딸들은 살이 빠져서 날씬해졌다. 언니를 따라먹으니 저절로 살이 빠진 둘째는 그게 신기한지 열심히 언니 말을 잘 따르게 되었다. 딸들의 피부가 좋아지고 내 눈에는 더 예뻐진 것이 틀림없다. 건강하게 먹고 운동을 하니 점점 피로감이 없어지고 늘 활기가 있어서 내게는 그 점이 가장 큰 변화이자 좋은 점이다. 과거에는 아침을 먹고 나서(혹은 출근하고) 마시는 한 잔의 따끈한 커피 믹스가 내 인생의 낙이었는데 드디어 그걸 끊을 수 있었다는 것도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중년이 되니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을 하게 되었고 무엇을 먹는지, 얼마나 움직이는지가 건강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건강에 위험 신호가 오기 전까지는 몰랐다. 왜 남들이 입에 거친 현미와 통밀을 먹고 달달구리를 꺼려하는지 통 모른 채 입맛대로 먹었다면 이제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가려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이 부족했을 때는 잠들기가 어려웠고 한번 깨면 쉽게 잠들 수 없어서 거실에 나와서 잤는데 이젠 일찍 자고 중간에 깨도 금방 다시 잠든다. 계단 오르기, 실내 자전거 타기, 걷기, 스쾃 등을 하루 종일 하고 나면 몸이 노곤해서 잠이 달콤하다.
자연식물식을 하고 나서 벌어진 첫째의 변화는 너무 극적이라서 언제 딸의 허락을 받고 한번 써볼 예정이다. 먹는 음식만 바꿔도 삶이 바뀌어 버린 딸의 엄청난 변화는 말 그대로 그녀의 인생 전체를 바꿔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