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6개월 뒤에 보자 했지만 매일매일 식단과 운동으로 힘든 일과를 보내던 터라 석 달을 기다려 오늘 다른 병원에 가서 당화혈색소 검사를 마쳤다. 두 시간 뒤에 결과를 들으러 갔다.
6.4이던 당화혈색소 수치가 6.0으로 내려갔다.
이것은 탄수화물을 줄인 덕분이다. 여름이라 운동을 더 할 수도 없어서 아침 식사엔 그동안 먹어왔던 오트밀을 건너뛰고 콩물로 대체했다. 점심과 저녁에는 여전히 현미채식으로 먹었지만 반 공기의 현미밥을 두어 숟갈로 줄였다.
문제는 간식인데 아몬드와 가공치즈 그리고 우유 크림이 들어 있어 든든한 카페라테를 한 잔씩 마시곤 했다. 오이나 방울토마토 따위로는 허전한 속을 채우기가 힘들었고 이미 아침에 샐러드로 먹었기에 조금 더 고소하고 진한 간식을 먹고 싶었다. 딸은 유제품과 커피를 꺼렸지만 다른 먹거리가 없었기에 한동안먹었다.
그런데 말복이 지나서 시누이 내외와 염소탕을 먹으러 가던 참에 시누이는 유명한 한약사 유튜버를 알려주며 당뇨에 관한 내용을 들어보라고 했다. 아침에 과일채소식을 권하는 사람이었는데 연속혈당측정기가 나오고부터는 과일이 해롭다는 주장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혈당이 오르기는 하지만 완만하게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실시간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당뇨 환자들도 과일을 먹어도 된다는 솔깃한 내용이었다.
급격하게 치솟는 혈당 스파이크를 무엇보다 경계해야 하는 당뇨인들은 당도 높은 과일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어서 신 맛이 나는 과일만 한두 입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채소 과일 같은 자연 상태의 단 맛은 죄가 없다며 단지 가공 식품과 함께 먹거나 식후에 먹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아침 샐러드에 골드보다 단 맛이 적은 그린 키위는 하나를 깎고 사과, 바나나 같은 과일은 반 쪽씩 썰어 양배추나 상추와 함께 먹었는데 이제부터는 간식으로 남은 사과 반 개와 바나나까지 마저 먹으니까 달콤하고 든든했다. 배고플 때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간식에서 조금 자유로워지자 사는 게 훨씬 즐거워졌다.
어제는 모처럼 암카페에서 만난 십년지기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일본가정식을 파는 식당에서 그라탕과 파스타를 먹고 저녁으로 후라이드 치킨과 골뱅이소면을 두어 젓가락씩 먹었다. 예전 같으면 손도 안 댔을 음식이지만 요즈음 혈당이 잘 조절되고 있는 것 같아 언제나 반가운 아만자 친구들과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지난 일 년 하고도 석 달 동안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혈당과 씨름하느라 좋아하는 탄수화물을 마음 놓고 먹지 못하고, 식사가 끝나고나서 곧장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했다. 없던 강박 증세가 생길 지경이었는데 오늘 새로운 병원의 의사에게 단기간으로 당화혈색소 5.6이라는 정상 수치까지 내리는 것에 더 주력할지, 아니면 중장기적으로 6%대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내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더 뺄 살이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니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아서 혈당이 오를 수 있다고 유지하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오르락내리락했던 당화혈색소 수치를 추적해서 내린 결론은 탄수화물이 혈당을 올리는 주범이었고 과일은 비교적 죄가 없었다.
가장 멀리해야 하는 음식은 가공 식품으로 공장에서 나온 먹거리들이고 자연 상태의 엔자임(효소)이 살아 있는 채소 과일은 내 몸에 이로운 성분들로 가득 차 있다. 며칠 전부터 가공 치즈와 카페라테를 끊고 과일로 간식을 먹기 시작하니 몸이 더 가뿐하게 느껴진다.
항상 가볍고 활력이 넘치는 몸 상태였는데 지난주엔 스트레스받는 일이 좀 있었다. 남편 일 때문에 컴퓨터를 상대로 세 시간 동안 끙끙대며 낯선 업무를 했더니 어찌나 피곤하던지 이틀 동안 피로감이 가시지 않아 정말이지 오랜만에 피곤을 느꼈다. 몸이 고되지 않아도 정신으로도 충분히 지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처음에 당뇨 전단계를 진단받았을 땐 몇 달 동안의 철저한 식이와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누군가 일 년 이상 걸린다고 했을 때 그렇게 길게는 못 한다고 생각했다. 끼니마다 순서대로 밥을 먹어야 하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대부분이며 먹고 나서 바로 움직여야 하는 당뇨는 죽어야 끝나는 지독한 형벌 같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좋은 점이 더 많았다. 몸은 더 가볍고 쾌적해지고 마음도 따라서 즐거웠다. 너무 철저하게 하려니 외식이 힘들고 같이 식사하는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했지만 어느 정도 수치가 안정되고 나서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남들 먹을 때 두어 젓가락 정도는 같이 먹을 수 있고 달콤한 빵이나 쿠키 같은 것도 한두 입 정도는 먹는다. 먹어도 안 죽는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무엇을 먹느냐가 건강의 시작이니 건강한 음식을 먹는 일이 습관만 들이면 최고의 비법이 된다. 거기에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여주면 운동선수 부럽지 않은 가벼운 몸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건강하게 먹으면 배출하는 일도 수월해지고 내 몸의 전반적인 상황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당뇨는 다이어트와 같다. 만성질환으로 꾸준히 노력하는 수 밖에 없고 식탐에 빠지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그러니 수양하듯이 도를 닦는 마음으로 절제하는 식습관을 지니고 몸은 반대로 자꾸 움직여서 괴롭히면 날렵한 몸과 명랑한 마음이 따라온다. 말은 참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