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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ug 17. 2023

별 거 없는 자연식물식

해로운 거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함정!

날마다 무엇을 먹는지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자연식물식은 가볍고 쾌적한 몸과 경쾌한 마음을 갖게 한다. 사 먹지 않고 부지런히 해 먹는 하루하루가 쌓여 밤이 되어도 피곤하지 않은 체력을 갖게 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으니 바로 해로운 것을 절제할 줄 아는 마음이다.


아무리 한살림에서 유기농으로 만든 재료들을 사서 먹으면 뭐 하나. 이십여 년 동안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한살림에서 기본양념과 식재료를 배송받고 그것도 모자라 매장에 들러 시장을 봐도 나는 십 년 전에 위암을 겪었다. 넘치는 식탐과 무절제한 식이에 스트레스 관리까지 실패한 대가로 위를 몽땅 잘라내야 했다. 식도와 연결된 소장으로 음식이 바로 내려가고 그걸 조절해 주는 유문부가 없어서 아직까지도 먹다가 막혀서 식사를 멈춰야 하는 때가 있다.


위를 절제한 사람은 췌장에 부담이 더해져서 당뇨 고위험군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암카페에서 글을 읽었다. 당뇨 유전자까지 물려받았던 나 같은 경우엔 조심해야 했는데 그걸 몰랐다. 암에 걸리고서야 마음 관리하는 법을 알았다면 당뇨 전 단계에서 몸을 관리하는 법을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좋은 것을 찾아 먹는 것보다 해로운 걸 거르는 게 훨씬 더 힘들다는 사실을!


요즘 우리 집에서 주로 쓰는 양념은 단순하다. 국간장과 진간장, 소금, 깨소금, 마늘, 식초, 고춧가루가 전부이고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약간의 참기름과 들기름, 현미유를 쓴다. 시중에 나오는 온갖 소스며 양념들을 쓰지 않아도 재료의 맛을 충분히 낼 수 있으니 굳이 첨가물이 많은 것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일 년 동안 자연식물식을 해서 입맛이 소박해진 덕분인지 금방 딴 텃밭 채소의 싱싱한 단맛으로 양념을 약간만 넣어도 맛있게 느껴진다.


나물 반찬은 같은 걸로 자주 해 먹지만 새로 무치기만 해도 새롭게 맛있으니 오늘은 뭘 해 먹나 고민할 필요 없이 냉장고에 항상 채워져 있는 호박, 오이, 가지, 버섯, 콩나물, 숙주나물. 두부 이런 걸 데치거나 볶거나 끓이면 된다. 여러 가지의 채소를 아낌없이 듬뿍 넣으면 카레나 된장찌개도 훌륭한 맛을 내기 때문에 한 끼 요리로 손색이 없다.


날마다 시장을 보기에 식비가 전보다 많이 들어도 끼니마다 새로 만든 맛있는 나물과 채식 요리로 한 상 차려서 먹고 나면 맛있어서 기분도 좋고 속이 편하다. 사 먹지 않으니 과식할 위험이 없고 여름에 배탈 날 염려가 없다. 원래부터 고기보다는 나물을 좋아하는 남편의 식성에 따라 반찬을 해왔기에 우리 집은 딸이 하는 자연식물식이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음식을 준비할 때 양념과 기름을 조금 더 줄이고 조리 과정을 단순하게 해서 되도록 자연 상태에 가깝게 먹으면 된다.


딸이 만든 오이탕탕이가 바로 그것인데 오이를 막대로 마구 때리더니 으깬 오이에다 소금과 식초, 깨소금만 넣어서 그걸 반찬이라고 내놓기에 처음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칼로 썬 것도 아니고 오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도마에다 놓고 탕탕 때리더니 모양도 만들다 만 것 같았는데 먹어보니 오이향이 가득한 것이 아주 신선하고 맛있었다. 이제는 딸에게 가끔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다.


텃밭에서 깻잎을 하나하나 따려니 모기가 어찌나 달려드는지 아예 뿌리째 뽑아 들고서 데크에 와 손질을 해야 했다. 샌드플라이라고 하는 먹파리가 귓바퀴와 귀 속을 물어뜯는 바람에 가렵고 열이 나서 며칠 동안 고생을 했다. 그렇게 뜯어온 깻잎순으로 나물을 했는데 향긋한 들깨향이 진하게 나서 왼쪽 귀가 빨간 채로 맛있게 먹었다. 텃밭 채소는 이렇게 야생의 생생한 체험과 함께 해야 해서 아주 친한 사람에게만 나눠주게 된다.


시누이에게 주려고 남겨놨던 조선오이를 딸이 오늘 식습관 강의하러 가는 길에 수강생들에게 보여 준다고 가져가서 시누이에게 줄 오이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끝물을 향해 가는 텃밭 채소들


모기에 물려가며 뜯은 깻잎순


<별 거 없는 자연식물식의 현실 밥상>

   


오늘 점심 밥상


오늘 저녁 밥상 (점심과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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