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내가 끼니마다 집밥으로 해 먹는 자연식물식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고는 하지만 한 번씩 흔들린다. 딸이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식이가 다시 잡히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간식을 고탄수로 먹을 때마다 이벤트(혈당 스파이크)를 겪는다. 마음을 다잡고 정갈한 식습관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몰입'할 대상을 찾는 것이다.
가을이 되자 친한 사람을 만나 베이커리 카페에 갈 때마다 달달한 빵의 유혹을 참기가 힘들었다. 밀가루, 떡, 튀기거나 기름진 음식들은 이제 생각나지 않는데 유독 커피 향 가득한 카페에서 바삭하고 달콤한 디저트 류의 빵과 따끈한 아메리카노는 내게 치명적이다. 한두 입만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카페에 가지 않으면 된다.
11월이 되어 심기일전한 딸과 함께 집 근처 시립 체육관에 요가를 등록했다.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수업으로 딸은 지하에서 강도 높은 요가를, 나는 3층에서 공요가를 신청했는데 첫 수업을 하고 나서 딸이 반을 바꾸었으면 했다. 딸은 저녁에 주짓수를 하고 있어서 남자들과 멱살잡이를 하느라 힘들기 때문에 요가는 편안한 수업을 하고 싶다며 공요가를 원했다. 내게는 근력 운동까지 하는 요가 수업이 더 맞을 거라고 딸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두 번째 수업 시간이 되기 전에 다행히 양 쪽 요가 선생님들의 양해를 구해 수업을 바꾸게 되었다. 멜론만 한 공을 목이나 허리 아래에 놓고 편안하게 누워서 무릎 위에 밴드를 끼고 하던 공요가에서 셀프 고문 자세를 취하는 지하의 요가를 경험하고 나자 집으로 걸어올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낄낄대는 딸의 튼실한 허벅지를 베고 바깥의 벤치에 누워 한참 진정하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딸은 공요가를 해보더니 자신이 딱 원하던 수준이라고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종이 접기처럼 앞뒤로 옆으로 착착 접히는 요가 강사의 몸을 훔쳐보며 부들부들 떨리는 팔다리로 겨우 따라 했다. 코어 근육이 부족한 나는 나무자세를 할 때 한 발로 서있는 것도 힘든데 팔을 위로 앞뒤로 쭉 뻗으려면 중심 잡기가 어려워서 땀이 삐질삐질 솟았다. 오른 손목은 부러지고 난 뒤 수술하고 아직 뒤로 젖히는 동작은 힘든데 그럴 땐 손목 대신 팔꿈치로 엎드리라고 강사가 친절하게 알려줬다.
식습관은 바꾸기 힘들고 바꾼 식이를 꾸준히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식사보다 중간의 간식 시간이 더 힘든데 아무 거나 먹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몰입할 대상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딸의 경우엔 일에 집중하면 되지만 나는 운동이나 산책, 책 읽기나 글쓰기를 하면서 식탐에 빠지려는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노력한다.
마침 시월은 집에 있기엔 아까운 날씨 아니던가. '오늘 같은 날 집에 있는 자는 모두 유죄'를 외치며 시월 한 달은 하루도 집에 머무르지 않고 일주일 동안 십만 보를 걸을 정도로 날마다 공원과 산책로를 쏘다녔다. 이처럼 무언가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먹는 것에서 만족을 찾는 집착을 벗어날 수 있다.
몰입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 내게는 글을 쓰는 동안이고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요즘 내가 글을 자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돌아서면 배가 자꾸 고픈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