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할 때보다 더하다.'는 주위의 걱정 어린 말이 '난민 같아 차마 말을 못 했는데 이제 좀 좋아졌다.'로 바뀌었다. 가볍고 상쾌한 몸상태는 나만 느낄 뿐, 그동안 나를 바라보는 눈길은 동정 가득한 시선이었다.
<마른 당뇨는 건강한 음식을 충분히 양껏 먹고 근육 운동을 하면 된다.>라고 알고 있지만 의지가 약한 나는 양껏 먹는 것만 실천할 수 있었다.
과일채소를 커다란 접시에 한가득 담아 아침으로 먹고 있으면 보는 사람들이 많이도 먹는다는데 삶은 달걀 두 개와 통밀빵 두 쪽까지 먹어야 제대로 먹은 것 같다. 요즘은 딸이 만들어 준 마녀수프까지 챙겨 먹으니 공복 감 없이 든든하다.
배부르도록 먹은 후에는 걷기 운동을 꼭 하는 편이다. 나가기 싫을 땐 실내자전거를 타는데 살이 붙고 나서 생긴 변화로 훨씬 빨리 그리고 힘차게 페달을 밟게 되었다. 다리에 힘이 생긴 것인지 걸을 때도 지치지 않아 빨리 걸을 수 있다. 보통 하루에 만 보 이상 걷는다.
내가 몸무게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딸이 하고 있는 자연식물식 덕분이다. 겨울엔 채소찜을 하면 따뜻하고 부드럽게 많은 양의 채소를 섭취할 수 있는데 요즘 나오는 햇당근이나 브로콜리 연근 양배추 콜라비 버섯 등을 찜솥에 시간 차를 두고 찐 후,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를 뿌려 먹으면 아주 맛있다.
이렇게 건강한 음식으로 충분히 먹으면 탄수화물에 집착하지 않게 되어 현미밥은 반 공기가 안 되는 분량으로 먹어도 배가 부르다. 출출할 때마다 먹던 가공 치즈와 카페라테가 가스가 차고 장을 예민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끊었다. 간식으로 견과류 밖엔 먹을 게 없지만 식사량이 충분하니 그전처럼 허기에 시달리지 않아서 아몬드와 캐슈넛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대신 여러 가지 차를 두고 돌아가면서 마시면 커피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기분 전환이 된다. 이렇게 건강한 식사와 간식 그리고 차를 마시고 운동을 쉬지 않고 하면 몸이 좋아진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지만 우리는 몸이 아프기 전까지는 식생활과 운동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다. 많이 아파야 바뀐다.
나처럼 당뇨 전단계를 이유로 당류와 탄수화물을 멀리해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꼭 당뇨가 아니더라도 콜레스테롤과 소화불량, 피부병, 암 재발 방지, 비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건강한 식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다.
정제 탄수화물 대신 건강한 통곡물을 선택하고 해로운 당류를 제한하며 가공 식품보다 신선한 채소와 건강한 단백질을 섭취하는 노력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식이 조절을 해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세상엔 가공할 만하게 맛있는 가공 식품들이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고, 달고 기름진 온갖 먹방이 판을 치는 요즘 미래의 내 건강을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을 자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나처럼 많이 아파야 식습관을 바꿀 수 있고 병이 없는데도 예방 차원에서 절제된 식이를 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누구나 십 년 뒤의 건강을 위해서 지금부터 식이와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질병을 얻고 난 다음에야 뒤늦게 그 말을 따르고 있는 자신이 똥멍청이 같지만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기란 적어도 내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당뇨를 받아들이고 생활 습관을 바꾸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건강에 무지하고 미련한 자신을 원망하며 하루라도 빨리 수치를 정상으로 내리려고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는데 그걸 내려놓고 평생 가야 하는 길이라는 걸 인정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식이와 운동에 강박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나 이젠 그러지 않는다. 완쾌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훨씬 더 편해졌고 목표했던 체중에 도달했다.
건강한 식이와 꾸준한 운동을 해본 적 없는 내가 아프고 나서 긴 시간이 걸려 이제는 모든 일상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이렇게 노력해 보다가 그래도 안되면 그땐 또 다른 방법으로 하면 된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참 마음이 힘들고 아팠다. 아프니까 건강식 하지만 아프기 전에 하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