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과 함께 보름 동안 지낼 예정으로 언니가 있는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도착했다. 염려한 대로 기내식을 먹으니 위 없는 장에서 가스가 부글거렸지만 가져온 약을 먹으니 진정됐다.
운동을 꾸준히 해서 장거리 여행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었기에 언니를 만나보러 미국에 올 결심이 설 수 있었다.
미드 속에 들어왔다.
미드를 즐겨 보던 나는 영화 속에서 보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져서 모든 것이 신기했다.
반듯반듯한 앞마당의 잔디와 문이 열리는 차고가 그러했고 신발 신고 들어가는 현관이 낯설었다.
기계가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미국의 가정집은 서울 아파트의 쾌적함과 주말 시골집의 자연환경을 합쳐 놓은 것 같았다.
24시간 에어컨이 가동되어 천장에서 냉기가 나오니 밖이 더워도 더운 줄 모르고 지냈다. 외출할 땐 현관 옆에 붙어 있는 차고에서 출발하니 동선이 짧아서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햇볕이 아무리 뜨거워도 건조기로 빨래를 말리고, 식사 후엔 각자 덜어 먹은 접시를 씻어 식기세척기에 넣어 두면 언니는 세제를 넣고 기계를 돌렸다.사람 손을 최소한으로 하는 시스템은 확실히 몸을 덜 움직이게 했다.
식료품을 사러 차를 타고 집 근처의 월마트에 가봤다. 몸이 무거워 전동 카트에 탄 채로 물건을 사는 사람과 조그만 발이 체중을 감당 못 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는데 월마트에 보이는 대부분의 식품들은 초가공된 것이었다.
나도 위를 수술하기 전까지 과체중이었기 때문에 살을 빼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넘치는 식탐을 가라앉히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기 때문에 비만한 사람의 심정을 모르지 않는다.
헌츠빌의 한인교회에서 반주를 하는 언니여서 교회 집사님들이 돌아가며 밥을 사주었다. 중식뷔페, 스테이크 식당, 쌀국숫집을 다녔는데 그들은 조금밖에 못 먹는 나를 보며 아쉬워했다. 샐러드와 구운 고기를 몇 점 먹으면 배가 불러왔고 스몰 사이즈의 쌀국수는 반이나 남겼다.
버펄로 윙이 맛있다!
언니 집에서 일주일 동안 시차 적응을 한 후 세 자매는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캐나다의 나이아가라폭포를 보러 왔다.
헌츠빌에서 버펄로까지 비행기로 와서 국경의 다리를 걸어서 캐나다로 넘어왔다. 버펄로에선 버펄로윙을 먹어보라고 들었기에 원조집을 찾아 스무 조각을 시켜 먹어봤다.
한때 치킨집(남편의 가게)을했던 터라 치킨을 안 먹는 내 입맛에도 바삭하고 고소하니 맛있었다. 식사량이 엄청난 미국인들 사이에 조그만 자매 셋이서 스무 조각도 다 못 먹어 여섯 조각은 남겨 싸가지고 왔다. 다음날 아침에 먹어도 맛있던 버펄로윙!
사진으로 너무 봤나? 나이아가라 폭포
거대한 폭포임에는 틀림없지만 웅장한 사진으로 워낙 많이 봤던 나이아가라 폭포이다 보니 "이게 다야?" 소리가 나왔다. 유람선을 타고 폭포 가까이 다가가면 훨씬 느낌이 다르다는 여동생의 말에 기대를 가지며 내일은 빨간 비옷을 단체로 입고 물보라 속으로 들어가 볼 것이다.(캐나다의 유람선은 빨간 비옷이고 미국 쪽에서 타면 파란 비옷인데 예약 착오로 레인보우 브릿지를 다시 건너가서 파란 비옷을 입고 유람선을 탔다.)
언니가 8달러 주고 산 나이아가라 마그넷
버팔로 윙
사흘 동안 폭포를 구경하다.
유람선을 타고 앞에서 보고, 전망 좋은 곳에서 위를 보고, 폭포 뒤의 동굴에서 보고, 아침에 가서 보고, 저녁에 가서 봤다.
이제 나이아가라 폭포라면 어지간히 봐서 평생 안 봐도 괜찮을 듯하다.
폭포 바로 위에서
폭포 뒤쪽 동굴에서
폭포 앞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답게 각 나라의 사람 구경은 실컷 했다. 인도가 인구수가 많아서 그런지 인도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행 막바지가 되니 캐나다나 미국은 워낙 땅이 넓어서 사람이 별로 없기에 한산하고 여유롭게 다닐 수 있는 점이 무엇보다 부럽게 느껴졌다.
서울을 더 자주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시의 일정을 당분간 모두 접고 여름 동안 시골에 푹 파묻히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