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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n 17. 2016

착공이 늦는 이유

남편과 시공을 맡은 방 소장님은 세 차례 미팅을 끝내고도 아직 계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


건축비로 일억천육백만 원이 책정되었으나 남편은 일억천만 원으로 맞춰보고자 했는데 방 소장님의 대답이 없고 날짜는 자꾸만 지나갔다.


공사 견적이 나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최종 합의가 되지 않고 있어서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적인 시공 내역에 대해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끼어들기도 그래서 기다리고만 있었더니 마침내 설계를 해주신 교수님이 중재에 나섰다.


교수님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방 소장님의 대답이 없는 걸로 봐서 그 금액으로는 안 되는 모양이니 남편에게 수긍을 하라고 한 모양이나 남편은 더 버텼고 결국 백만 원을 깎아서 일억천오백으로 하자고 결론이 났다.


내 남편이지만 참 어지간하다.


남편은 옛날부터 나는 분필가루를 마시지만 자신은 콘크리트 먼지 마시며 번다고 비교를 하며 돈에 화통한 나보다는 훨씬 알뜰하긴 했다.


교수님이 설계에 들어가기 전에 나더러 집은 천천히 지어야지 서두르지 말자고 당부하시더니 그 말씀이 참으로 옳았다.


이래저래 시간은 흐르는 강처럼 흘러가고 주변 사람들은 집은 언제 짓느냐고 묻지만 나는 대답할 말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장마철인데 올해는 비가 많이 온다니 집을 지으려면 어찌 될 건지 모르겠다.


나는 또 안타까운 것이 뜨거운 땡볕에서 고생할 사람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봄이나 가을에 공사를 하면 야외에서 일하기가 훨씬 덜 고될 텐데 하필이면 한창 더울 때 착공을 하게 되면 그것도 일할 사람들에게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입주가 늦어지더라도 차라리 가을에 시작하고도 싶다.


지금 세 들어 있는 집을 팔려고 내놔서 사람들이 수시로 집을 보러 들락거리니 그것도 좌불안석이긴 하지만 더위를 못 참는 나로서는 이 불볕더위에 남의 집 짓느라 구슬땀을 흘릴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또한 가시방석이다.


며칠 동안 여기저기 놀러 다니느라 바빠서 남편에게 집 짓는 진행 상황을 차분히 물어볼 시간도 없었는데 도대체 올 해안에 집 지을 생각이 있는 건지 들어오면 단단히 따져 물어봐야겠다.


 어제는 울산에 사는 여동생 집에 갔다가 외사촌 동생이 살고 있는 경주의 마우나 리조트에 가보게 되었다.


사촌 동생은 울산 외곽에서 조그만 의원을 하며 의사로서의 성공보다는 소박한 삶을 꾸리는, 한량 기질이 다분한 사내인데 중학교 시절, 방학을 하고 외갓집에 가서 그 애와 재밌게 지내다가 헤어질 땐 내 생애 최초로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서 바람이 지나가는 듯한 상실감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랬는데 정작 그 사촌 동생은 남자애라 그런지 그런 사실을 기억도 못하고 있어서 한 편으론 나만 느낀 감수성이 억울하기도 했다.


그랬던 사촌 동생이 퇴근 후와 주말 만이라도 맑은 공기를 쐬며 산과 바다를 조망하고 싶어 리조트를 사서 식구 모두 산 중턱까지 오르내리는 수고를 감수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클래식 기타 동호회 사람들이 이십여 명이나 와서 작은 연주회를 하고 지인들이 자주 와서 함께 자연을 즐긴다면서 늦은 시간이었지만 산 중턱에 있는 자기 집까지 차로 안내해주어 구경을 잘 하고 왔다.


리조트라서 천장이 높고 복층 구조라 살림하기는 조금 불편해 보였지만 탁 트인 정원에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전망은 훌륭했다.


우리 집도 다 지으면 천장이 높아서 답답한 아파트와는 다른 공간이 될 것 같은 기대에 그 집의 사진을 찍어왔다.  


그런데 잔디만 아니면 주택도 살만하다는 그 집 안주인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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