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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n 22. 2016

살림이 재밌다!





유럽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첫째를 환영하는 의미로 여름 커텐을 만들었다.


시장에서 파는 이천 원짜리 손수건 아홉 장을 한땀 한땀 연결해서 딸이 쓰는 안방에다 걸어놓자 딸은 무척 멋지다면서 좋아했다.


프라하에서 스카이다이빙까지 하고 돌아온 심장 튼튼한 내 딸이라니!


연약해보이는 친구와 둘이 가는 여행이어서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한번 훑고 왔던 곳이라 3주 동안 알차게 보내고 왔다며 기념품과 선물을 쏟아놓으니 집안은 금새 여행의 여운으로 가득찼다.




또 마음이 복잡할 때는 집안의 한 곳을 뒤집어 엎으면 시끄럽던 속도 깨끗해진다.


지난 몇 년간 내버려둔 뒷베란다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동행의 회원인 웅이쭌맘마리아님이 사주신 원두 자루 두 장 덕분에(고마워요~마리아님!)우리 집에서 가장 지저분하던 곳이 이젠 커피를 마셔줘야할 공간으로 깔끔하게 변모했다.






이것은 요요인데 어디든 갖다놓기만 해도 이처럼 매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는 손바느질이 일등공신이다.




시간이 많고 할 일은 별로 없는 나는 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가 그것도 지루하면 이렇게 집안 구석구석을 돌보며 살림하는 재미로 산다.


해가 지면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가벼운 몸으로 공원을 한시간 반동안 걷는 것도 좋아하는 일과이다.


하지만 이처럼 한가해도 되는 것인지 아직도 뭔가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이 어쩐지 익숙하지 않다.


어제 시누이와 저녁을 먹으러 가던 길은 지난 7년 동안 내가 출퇴근하던 익숙한 길이었다.


그런데 거리를 지나가자니 거짓말처럼 힘들었던 그 때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생각났다.


이른 출근길과는 어울리지 않던 막막함과 늦은 퇴근길에서 오던 그 먹먹함이라니..


아! 좀 더 놀아야 해~~


놀다가 마침내 권태를 견딜 수 없을 때가 오면 다시 일을 하고 싶어질 것 같다.


우리 집에 놀러온 지인의 조카에게 누군가 나를 선생님이었다고 소개하자 머리를 가로 흔들며 아니라고 부정하는 아이를 보니 그저 동네 할머니일 뿐인 나 자신이 우스워서 나도 그만 실소가 나왔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내가 도덕 교사였으므로 빼도 박도 못하는 꼰대라고까지 했다!(진짜로 내가 꼰대?)


체력이 바닥에서 이제 무릎 정도까지 올라온 것 같은데 언제쯤 가슴까지 와서 하루 종일 거뜬히 버틸 수 있을지, 몇 시간만 활동해도 드러누워야 하는 기운으로는 아무 일도 장담할 수가 없다.


커텐을 다 만들었는데 색상의 배치가 마음에 안 들어 뜯어서 다시 꿰맸다니까 여동생이 "시간도 참 많은 모양"이라고 해서 '내게 지금 넘쳐나는 유일한 것이 그것 뿐인데 어쩌라구?' 라고 속으로만 되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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