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 Apr 24. 2017

봄, 잔치가 시작되었다.

홑황매화의 곱디 고운 노랑빛

시골집의 즐거운 나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열린 창으로 산들산들 봄바람이 들어오고 따뜻한 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라일락 꽃향기 감도는 봄날이다. 텃밭은 농사를 시작해서 여린 모종들에게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는 즐거운 일과가 시작되었다. 잔디밭의 잡초도 드디어 뽑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모양의 풀은 발견하는 즉시 마치 나의 안녕을 위협하는 적군이라도 되는 듯이 신속하고 확실하게 제거된다.


겨울 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어졌던 시골집에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물 밥상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군침을 흘리며 언제 가면 되냐고 묻는다. 이제 냉이는 꽃대가 올라와서 끝났고 홋잎 나물은 이파리가 펴지기 전의 며칠 동안만 훑을 수 있다. 요즘은 어린 머위를 잘라 데쳐서 무쳐 먹는 맛이 각별하다. 쑥은 아직도 먹을 수 있다.


작년 연말에 KBS 다큐 <앎>에 출연했던 두나미스와 마카다미아 부부가 문호리에 온 김에 우리 집까지 오셨다. 쑥을 캐기 위해 나선 길이라고 해서 동네의 산으로 올라가 평지보다 향기가 진한 산쑥을 캐고 머위나물과 쑥전, 두릅 초무침으로 차린 이른바 항암식단으로 맛있게 드시고 가셨다. 마카다미아님의 친정어머니와 어린 딸도 함께 왔는데 어머니가 어찌나 젊으신지 나와 친구를 해도 될 듯했다. (어느덧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었단 말인가!)


집을 짓고 마당을 넓히다 보니 밭이 열 평도 안 되게 작아졌다. 그래서인지 한결 수월하고 부담 없이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감자와 옥수수는 싹이 났고 어제는 상추와 땅콩을 심었다. 동네의 인심 좋은 어르신이 땅콩 종자를 한 움큼 주셔서 우리 밭에도 세 고랑 정도 심었다.  상추 모종도 주셔서 모종으로 심고 여러 쌈채소는 씨를 몇 봉지 사서 뿌렸다. 솎아 먹는 재미를 맛보기 위함이다. 아직 밤 기온이 낮아서 신문지로 고이 덮어놓고 왔다. 고추 등 열매를 맺는 모종은 그래서 5월 초에 심을 예정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이슬이 축축이 내린 잔디를 밟으며 마당으로 나가 긴 호스에 분사기를 달아 잔디와 작물에 골고루 물을 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뒷마당의 야생화에게도 잊지 않고 고루 물을 뿌리며 하나하나 눈 맞춤하며 인사를 나눈다. 예쁜 꽃은 누굴 위해 저렇게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존재하는지 나는 그것이 늘 궁금하다.(앵초, 너는 어쩌자고 이름까지 이렇게 고운 거냐?)


농사일을 하고 나면 옷이 흙투성이가 된다. 방수가 되는 바지에 호스를 대고 대충 흙을 씻어 내린 후 옷을 갈아입고 나서 아침을 먹는다. 밥을 먹고 나면 커피 머신에서 캡슐로 아메리카노를 내린 후 데크에 나가서 마신다. 평상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셔야 훨씬 더 맛있다.


식전에 한두 시간의 일이 고단할 것도 없는데 나는 퍽 고단해서 한낮에는 책을 보다가 주로 잔다. 나물 캐고 나면 힘이 들어서 얼굴이 부은 줄 알았더니 몸 상태가 좋은 날에도 부은 얼굴로 사진에 나오는 걸로 봐서 아마 살이 찐 듯하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 해질 무렵엔 또다시 바빠진다. 오전에 미처 못한 텃밭을 돌보고 잔디밭을 오리걸음으로 다니면서 그새 자란 잡초가 없나 매의 눈으로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잔디밭은 남편의 소원으로 내가 만들어주기로 약속했던 까닭에 온전히 나만의 풀 뽑기 현장이 되었다.


전원주택에 살면 이웃 간에 정원 가꾸기가 경쟁이 된다고 예전에 박완서 선생님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동네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텃밭과 잔디밭에 공을 들이게 되고 나중에는 내가 이 집의 주인인지, 잔디가 주인인지 모르는 지경이 된다는데 그게 한심하게 여겨지는 건 마당이 없을 때 얘기다. 눈만 뜨면 보이고 길에서도 훤히 들여다 보이는 잔디밭과 텃밭은 주인의 성격과 생활이 그대로 보이는 곳이기에 게으르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된다.


고요한 가운데 새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시골은 맑은 공기와 눈 맛이 시원한 경치가 그만이어서 처음 온 사람들은 감탄하기 바쁘다. 크지 않지만 작아 보이지도 않는 땅과 집은 칭찬 일색이고 나무 울타리까지 둘러 심자 아늑한 집이 완성되었다.


시골집은 혼자 있을 땐 고적한 맛에, 여러 명이 모이면 떠들썩한 맛에 좋다. 물론 밤에는 혼자 보다는 여러 명이 훨씬 더 좋다. 밤은 아직 무섭다.  






작가의 이전글 화살나무 울타리 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