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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y 01. 2017

시골 생활은 그런 것이 아니야.

무릎이 쑤신다.  


처음엔 오른쪽 무릎이 콕콕 쑤시며 절뚝거리게 하더니 이튿날부터는 왼쪽 무릎도 쏙쏙 쑤시기 시작해서 앉았다 일어나면 걷는 모양이 우스꽝스럽다.


잔디밭에 쭈그리고 풀을 뽑고 텃밭과 꽃밭에 물 주고 어쩌고 하느라 앉았다 일어섰다를 며칠 동안 반복한 결과였다.


본격적인 농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무섭게 자라는 풀과의 전쟁도 아직 멀었고 모종을 다 심지도 않았다.


팔이 쑤신다.


나물을 캐고 뜯고 따느라 한두 시간 몰입하고 나면 어깻죽지가 무겁고 팔을 들기가 힘들다.


바람이 부는 바깥에서 활동하다 보면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헤어컬로 말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밀짚모자에 눌려서 원래 모양은 온데간데없다.


너무 힘이 든다 싶으면 흙투성이로 아무 데나 퍼질러 주저앉거나 심지어 그늘에 드러눕기도 한다.  


나 혼자 이렇게 열심을 내봤자 남편이 바깥일을 다 하는 다른 전원주택과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동네와 좀 떨어져 있는 전원주택 단지에는 구경 가는 게 아니었다.


산언덕에 층층이 들어서 있는 예쁜 주택은 서로 경쟁하듯이 정원과 텃밭을 가꾸어 놓았다.


그런데 연구원이거나 지점장 또는 CEO 출신의 건축주들은 성실과 근면으로 무장하여 잔디밭은 잡초 하나 없이 바짝 깎아서 정리가 되어 있고 꽃나무와 화초에는 이름표까지 달아서 가지런히 정돈이 되어 있었다.


텃밭의 흙은 마치 체로 쳐서 거른 듯이 콩가루처럼 고운 데다가 모종을 줄 맞춰서 가지런히 심어 놓았다.


남보다 체력이 달리니 잘 하려고 하는 욕심도 부족한 우리 부부는 되는 대로 해놓고 살다가 저런 집을 보면 기운이 빠진다.


우리 집이 있는 동네에 들어서면 수십 년 농사를 지은 어르신들의 밭에 농작물들이 왕성하고도 힘차게 이파리를 펄럭거리며 부실한 우리 밭의 작물들을 비웃는 것 같다.  


허우대만 멀쩡한 우리 남편은 인공 고관절에 이어 팔꿈치에 물이 차는 새로운 증세가 나타났다.


팔을 쓰면 안 되니 팔다리를 모두 아껴야 하는 저 이를 어디다 써먹을꼬?


시골집에 여름이 오면 잡초 속에 파묻혀 집으로 들어갈 수나 있을지 풀만 생각하면 초여름의 날씨가 무섭다.


얼마 전에 하프 공연을 보고 왔다.


천상의 악기라는 하프는 페달이 일곱 개나 있어서 새끼손가락을 뺀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47개의 줄을 우아하게 연주하고 있지만 발로도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야 해서 마치 백조 같은 악기라고 했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바빠야 하는 것은 하프나 시골 생활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넓은 잔디밭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실 때면 세상 부러운 것 없이 만족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릎과 손마디가 삐걱대는 노동을 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예전과 달라진 체력이 믿기지 않고 제 맘대로 노화되어 가는 몸뚱어리가 야속하기만 하다.  


남들이 다 놀러 가는 연휴에 남편과 나는 고추나 오이 같은 모종을 사서 심고 잡초를 막기 위해 검정 부직포로 덮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일이 힘들면 예민해지는 남편과 부직포를 마주 잡다가 싸울 때가 많은데 이번엔 안 싸우고 잘 할 수 있을지.. 농사일과 주방 일을 같이 해야 하는 나는 더 힘들지만 남편은 그걸 모른다.


시골집이 내 명의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남편은 마치 주인집에 일해주러 온 마름처럼 일을 했으면 새참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이웃이 십 년 동안 키운 앵초를 나눠줬는데 땡볕에 그만 시들어버려서 살려보려고 그늘도 만들어주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면서 "앵초야, 앵초야." 불러가며 애를 태웠다.


분홍색 갈래머리 소녀들이 조르륵 달린 모양으로 앙증맞은 금낭화는 예전에 세 살던 마당의 바위 틈에서 캐내어 우리 꽃밭에다 심었더니 발랄하던 소녀들이 시들시들해버렸다.


그래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몇 뿌리 더 캐와서 돌담 밑에 심어놨는데 그냥 동네나 남의 집 소녀들을 훔쳐보는 것으로 만족할 걸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찜찜하다.


앵초와 금낭화 같은 야생화에 비하면 의젓하고 든든하기는 나무만한 것이 없다.


제법 자란 세 그루의 나무를 얻어 와서 심고 오는 마음이 어찌나 충만하던지 고단한 몸이 회복되는 대로 시골로 빨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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