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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pr 18. 2017

화살나무 울타리 심다.

울타리로 심을 나무의 후보는 회양목, 남천, 화살나무 세 가지였다. 회양목은 아파트나 학교 화단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나무인데 사시사철 변함없는 초록으로 딱히 예쁘다거나 하는 맛이 없다. 남천은 단풍이 빨갛게 들지만 추운 지방에서는 잘 안 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이웃의 추천을 받아 화살나무로 울타리를 정했다.


봄에는 홋잎나물을 먹을 수 있고 단풍도 예쁘고 겨울이면 왜 화살나무인지 알 수 있게 가지 모양이 화살을 닮았다. 서쪽에 있는 옆 땅은 주인이 돌담을 쌓으며 우리 집과 경계에도 둥근돌로 예쁘게 표시해놓았다.




동쪽은 길 쪽으로 이미 돌담이 있어서 남쪽만 경계를 하면 되는데 길에서 집 안이 들여다보여 돌담 안에도 키 큰 화살나무를 심어서 시선을 막기로 했다. 한 주당 칠천 원하는 나무를 백 주 정도 주문했다. 우리 집 조경을 했던 업체라 오백 원을 깎아주기로 했다.  


벚꽃잎이 풀풀 날리는 상쾌한 봄날의 주말 아침, 포클레인과 트럭이 와서 분주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경계보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갔던 바위를 다시 측량선에 맞춰 내다 옮기고 화살나무를 순식간에 주르륵 심더니 마지막으로 전기톱으로 길이를 맞춰 잘라줬다.




밭에는 그늘이 진다고 키가 낮게 많이 자르고 길 쪽은 일 미터 이상 높게 해서 다 심고 보니 집 전체가 한결 아늑해졌다. 잘린 화살나무 가지는 창원에서 한약방을 하는 시숙이 보시더니 약재로 쓸 수 있다고 하셔서 따로 묶어 담아놨다.


자고로 수컷이나 남자는 영역 표시가 중요한가 보다. 남편은 아침부터 흥분한 채로 마당을 분주히 오가며 작업을 지켜보더니 부엌일에 바쁜 내게도 와서 좀 보라며 소리를 지른다. 그제야 잠깐 사이에 볕에 그슬린 남편 얼굴을 쳐다 보고 깜짝 놀라 밀짚모자를 쓰라고 말해줬다.   


시숙과 시누이 내외가 모두 오신 주말, 모두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지만 체력이 달리는 우리 부부는 거의 쓰러질 지경으로 힘이 들었다. 봄나물이 지천인 때에 딱 맞춰 오셔서 홑잎나물과 머위, 쑥으로 어느 성찬보다 맛있는 밥상을 차려 먹었다. 손이 빠르고 음식 솜씨가 좋은 시누이가 있으니 뜯어다 갖다만 주면 척척 맛있는 나물을 무쳐내었다. 하지만 나물 캐는 것도 은근히 중노동이라 캘 때는 모르는데 나중에는 온몸이 쑤신다.



홑잎나물
머위나물
쑥전


시숙은 창원에서 커다란 이층 저택을 지어 사시는데 우리 집을 보더니 샘날 정도로 잘 지었다고 하셔서 그동안의 사연을 처음으로 말씀드렸다. 암 진단금을 받고 친정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만하게 지었고 거기엔 큰집에서 주신 돈도 쓰지 않고 모았다가 이 집에 다 들어갔다고 설명을 구구히 했다.


일 년에 한 번쯤 오셔도 좁은 서울 집이 아닌 시골집에서 편안하게 쉬시다 가실 수 있으니 기쁘다고도 했다. 자주 오시라고도 했으나 그건 반쯤은 접대성이었다. 남편이 특히 좋아하고 모이면 즐겁긴 하지만 시댁 식구들 초대는 극도로 힘든 일이기도 해서 나는 언제쯤이나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아득하기만 했다.  


뒤꼍에 모아 심었던 과일나무도 업체에서 마당에 고루 심어주었다. 감나무는 안방 창문 바로 앞에 심었고 앵두나무는 우물가에 나머지 왕대추, 체리, 매실, 살구나무는 마당을 빙 둘러 넓게 심었다. 소나무도 모서리에 한 그루 심었다. 유실수는 물을 많이 줘야 한다고 심어준 분이 당부했다.


겨우내 집만 덩그러니 놓여있다가 봄이 되어 나무와 울타리를 심고 꽃밭도 채워지니 집이 한층 예뻐졌다. 조경이 집의 화장인 셈이라던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이제 물을 자주 주고 나무 모양을 잡아주며 잘 가꾸는 일만 남았다.


남편이 좋아하는 땅콩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다. 넓은 정원의 밭을 그냥 빌려줄 테니 마음껏 땅콩을 심어 먹으라는 인심 좋은 이웃을 두어서 밤새 물에 불려둔 땅콩을 심으러 식전 댓바람에 남의 집에 시댁 식구들까지 몰려가서 땅콩을 심고 왔다. 우리 밭의 두 배가 넘는 땅에다 심고 오니 벌써 마음은 가을에 땅콩을 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꿈에 부풀어 있다. 새가 심어 놓은 땅콩을 쪼아 먹지 않아야 장에 팔든지, 남편이 다 먹든지 할 텐데..


십 년씩 고이 기른 야생화를 퍼주는 이웃도 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아 집에 계곡까지 있는 이웃집에 시누이와 함께 가서 앵초같이 귀한 야생화를 얻고 황매화와 산수국도 캐왔다. 그 집은 봄이 되어 여기저기 꽃동산으로 가꾸느라 텃밭은 손도 못 대고 있고 계곡도 젖은 낙엽으로 지저분했지만 돌아볼 여력이 없어 보였다. 시누이는 그런 걸 두고 볼 사람이 아니라서 순식간에 물줄기를 터주고 바위를 물로 닦아 깨끗하게 해 주고 왔다. 그런데 거기서 캐온 산쑥은 평지보다 훨씬 향이 강하고 부드러워 쑥전과 쑥국을 끓이니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나는 복이 넘치는 사람이다. 낯설고 물선 곳에 와서 이렇게 좋은 이웃을 만나 온갖 도움을 받으며 살게 되고 일이라면 소매부터 걷고 덤비는 시누이가 있어서 우리 부부가 쳐다만 보고 있는 허드레 일을 몽땅 다 해주니 일 못하는 사람은 이래서 살게 되는 법인가 보다.


살면서 깨친 교훈 중의 하나가 모르는 게 약이고 무식하면 용감하고 바보처럼 살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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