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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pr 13. 2017

이층 버스를 타고 쑥 캐러 간 날

잠실에서 덕소역까지 가는 광역버스를 기다렸다.

앗! 그런데 이층 버스다.

난생처음 타 본 이층 버스는 타자마자 이층으로 올라가야 하나 보다.

맨 앞 좌석의 전망은 가히 환상적이었으나 앞 서 오른 두 남자가 좌석을 하나씩 차지해서 우리는 두 번째 좌석에 앉았다. 그래도 좋았다.


한강을 옆구리에 끼고 벚꽃 핀 워커힐 호텔을 올려다보며 씽씽 달리는 이층 버스를 타니 싱글벙글 웃음이 계속 나와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나와 함께 간 사람은 삼십 년의 교직 생활을 은퇴하고 날마다 기타와 일본어와 댄스를 배우러 부지런히 다니시는 선배 동료였다.  쑥 캐러 간다면 집에서 칼과 모자와 장갑까지 알뜰히 챙겨 오는 모범생 같은 분이다.


덕소에서 전철을 타고 용문에 도착하니 열 시 반이다.

열두 시 마을버스를 타려면 여유가 있어서 카페라테를 마시며 흥겨운 이층 버스 여행의 여운을 즐겼다. 용문 시내의 막국수집에서 비빔국수와 물국수로 이른 점심을 하고 마을버스에 올랐다. 서울은 떨어지기 시작한 벚꽃이 한창 절정이어서 창밖을 쳐다보느라 입은 헤 벌린 채로 구경을 했다.


집에 도착해서 잠시 쉴 틈도 없이 쑥을 캐러 나섰다.

둘이서 이야기하면서 캐니 혼자 캘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쑥전과 쑥국을 끓이기로 했다.

쑥을 적당히 캐고 나니 아까 막국수 집에서 만난 이웃이 자신의 밭에서 삼동파를 캐가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얼씨구나 하고 얼른 가 삼동파와 달래, 민들레, 냉이를 캐왔다. 그 집 뒤의 언덕에는 머위가 있어서 아기 손바닥만 한 머위도 잠깐 사이에 한 봉지나 잘라왔다.


이제는 요리 시간이다.

솜씨가 얌전한 동료 선생님이 민들레는 소금 약간과 참기름으로, 머위는 들기름과 된장, 냉이는 고추장으로 심심하게 무쳐놓으셨다. 나는 재작년에 농사지은 들깨를 갈고 콩가루에 버무린 쑥으로 쑥국을 끓이고 쑥을 쫑쫑 잘라서 밀가루에 슬슬 버무려 쑥전을 부쳤다.


구리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동료가 퇴근하고 찾아왔다. 가끔 만나는 동료들은 크고 반짝이는 새 차를 타고 온다. 이번엔 남편이 갖고 싶어 하는 차여서 마음이 잠깐 흔들렸다. 내가 집을 짓자고만 안 했어도 남편도 저 차를 탈 수 있었을 텐데..


얼마 전의 대화에서 남편이 "내가 당신에게 많이 맞춰준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만약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다면 상대방이 희생하는 거라던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내가 이렇게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건 퇴근하고서도 모니터의 서류와 씨름하는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날마다 자정이 넘어서야 에구구 앓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 눕는다.


시장을 보지 않고도 봄의 향이 물씬한 밥상을 차려서 거친 나물을 보약처럼 여기며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했던 얘기는 주로 산삼에 관한 이야기였다. 구리의 여고에 다니는 동료 선생님이 청와대에서 경호업무를 하고 국가 정보기관에서 일하다 지금은 심마니로 사는 자신의 대학 동창이 캐 준 산삼을 작년에 남편도 모르게 먹었다고 한다.  


야생 더덕과 석청도 먹었다는데 그 때문인지 허약해 보이던 안색도 좋아 보이고 건강해 보였다. 냉동실에서 쑥개떡을 꺼내 쪄놨는데 배가 불러 다 먹진 못해서 두 동료에게 싸드렸다. 쑥국도 마저 담아드리고 삶은 나물도 조금씩이지만 집에 가서 드시라고 봉지에 넣어드렸다.


밭에는 삼 주 전에 심어놨던 감자가 싹이 나려고 흙이 갈라져 있다. 해마다 보는 거지만 볼 때마다 생명의 경이에 놀라울 뿐이다. 옥수수 알갱이를 두 알씩 심었던 곳도 바늘 같은 싹이 두 개 뾰족하니 올라와있다. 바짝 마른 잔디와 힘없이 처져있는 꽃에도 물을 듬뿍 주고 나니 마치 내가 샤워한 것 같은 개운 함이라니!


세 명이 모두 한 동네에 살기 때문에 같은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시골집의 산너머로 떴던 보름달이 차창 밖으로 서울까지 따라왔다. 식구들이 자고 올 줄 알았던  내가 돌아오니 무척 반기며 좋아한다.  

 

집에 와서 가방 속에 넣어 뒀던 봉투를 열어봤다. 퇴직한 선배 동료가 돈과 함께 편지를 써서 내게 준 봉투였다. 새 집을 지어서 축하한다며 자기 인생에 온기를 더해줘서 고맙다는 가슴 찡한 문구를 써놓으셨다. 모범생은 뭐든 이렇게 모범적으로 하시니 보고 배울 점이 많다.  


네 번째 봄은 이렇게 화사하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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