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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pr 03. 2017

앵두나무 우물가에

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온다던~


라일락 꽃피던 봄이 오면 우리 서로 손을 잡고서~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우리 집 정원에 심을 나무의 주제곡들인데 아마도 모르는 분이 더 많은 노래여서 연식이 오래된 사람들만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체리, 대봉, 매실, 자두, 왕대추 나무도 우선 꽃밭에 모아 심어 놨는데 조경에 손볼 곳이 남아서 공사가 완성되면 집 주위에 한 그루씩 넓게 심을 예정이다.  


고민하던 나무는 나보다 수완이 좋은 시누이가 농장의 어르신에게 먼저 얘기를 꺼냈고, 남편이 나무를 받으면서 다시 말을 보태서 결국 골고루 얻어오는 데 성공했다.


추위에 약한 감나무는 집 앞에 바짝 붙여서 심어야 강원도 추위 같은 용문의 혹한을 넘길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앵두나무는 지하수를 판 자리 옆에 우물가 셈인 곳에 심으면 거실에서 잘 보인다.


열 평이 안 되는 텃밭에다 뒤꼍의 조그만 화단이다 보니 뭐든 조금씩 이웃에게 얻어서 구차한 농사를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거름도 조합원인 동네 이웃에게 해마다 서너 포대씩 얻어서 밭에다 뿌리고 모종 같은 것도 주위에서 심고 남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밭에 심어서 장난처럼 농사를 짓는 실력이 삼 년째이다.  


심지어 씨감자조차 뒷집의 남아공 외국인 주부에게 얻어서 심었다. 시누이가 감자를 심고 있는 그 집의 부부에게 심고 남으면 달라고 했더니(남자가 한국 사람이다.) 푸른 눈의 키 큰 그녀가 내게 감자 봉지를 건네면서 "a few~~"뭐라고 하는 걸 보니 너무 적다고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는 쌩큐가 전부일 수밖에 없어서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덥석 받아보니 싹도 안 난 자른 감자가 열 개 정도 들어 있었다.


작년에도 그렇게 심어서 감자를 수확했다고 하니 싹 난 감자인 줄 알았던 나는 약간 미심쩍었지만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우리 집에서 먹다가 남아 싹이 난 감자는 끓는 물에 소독한 칼로 잘라서 몇 개 심어뒀다.


차차 날씨가 풀리면 읍내에 나가 쌈채소며 오이, 가지, 고추 등의 몇 가지 모종을 사 와서 심는 걸로 올해 농사는 시작된다. 잡초를 매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곁순을 따주고 지지대를 세워주는 정도의 손길만 더하면 초여름쯤 싱싱한 작물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먹는 작물을 심을 때와 꽃을 심는 마음이 다르다.


먹는 건 그저 맛있는 채소를 먹을 욕심에 침을 삼킨다면 예쁜 꽃을 심는 마음은 뭐랄까 순수하게 더 설레고 기쁘다. 하지만 심기만 하면 쑥쑥 잘 자라는 작물에 비해 꽃씨는 잘 나지도 않고 까다로워서 조심스러운 마음도 훨씬 크다. 내가 잘 몰라서 못 기르는 주제에 예쁜 것들은 까탈스럽다고 몇 번이나 중얼거리게 된다.


나무를 심는 마음은 몇 년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키워야 결실을 보게 되니 꽃과는 다르게 진지하고 차분해진다.


주말농부에서 정원사로 한 단계 뛰어오른 것만은 틀림없는데 할 줄 아는 것은 별로 없는 엉터리라는 게 함정이다.


꼼꼼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터라 흉내만 내는 농사라도 재미는 똑같이 있다.


더 욕심이 있다면 낙엽과 쌀겨, 깻묵, 발효액 등을 모아 퇴비를 직접 만들어서 밭에 뿌려 보는 것이다. 발효가 잘 된 퇴비는 김이 무럭무럭 나면서 열이 난다는데 진정한 농부라면 그게 그렇게 부럽다고 한다.


탐스럽고 예쁜 꽃과 실한 농작물, 그리고 튼실한 과일까지 얻을 수 있는 멋진 농부이자 정원사가 되고 싶은 내 꿈은 몇 번을 생각해도 너무 과한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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