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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r 30. 2017

환절기 우울감

해질 무렵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사람들이 빠져나가 빈자리가 많은 곳 중 의자가 삐죽 나와 있는 아무 곳에 걸터앉아 뽑아온 책을 서둘러 펼쳐 들고 빠른 눈으로 책장을 넘긴다.


여덟 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서둘러 읽어야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어서 적당한 긴장감으로 책을 읽는다.


사람 많은 곳에서 마냥 늘어진 시간으로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진 내가 할 수 있는 소일거리 중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생산적이다.


뭔가를 배우고 습득하는 것이 이제는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아서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일상 속 잠깐씩 맛보는 달콤한 행복을 핥으려고 애쓸 뿐이다.   


가끔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가 있다.    


운전을 접었지만 면허는 갱신기간이 되어 집 앞의 경찰서 민원봉사실에 사진 한 장과 신청서를 써주고 나왔는데 집을 나선 김에 어디든 가보려 했지만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


도서관의 정기휴무일이어서 다 읽은 책을 바꾸고 싶지만 갈 수가 없고 공원으로 가기엔 뿌연 하늘의 공기가 너무 나쁘다.


동네 카페라도 갈까 했지만 오전에 이미 커피를 마셨기에 또 마실 수는 없어서 그냥 왔다.


그 날 이후 우울감이 나를 감싸고 놓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력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계절이 바뀔 때면 우울감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을과 봄은 이렇게 내 마음을 한동안 푹 담그고 나서야 긴 겨울과 여름을 맞이하곤 했다.   


대학교 사 학년 휴학 중인 첫째가 화이트데이 다음 날 키 크고 잘 생겼다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마음이 아파 내 어깨에 기대서 한참을 울었다.


심장이 깨지는 아픔으로 우는 딸의 눈물까지도 부러웠다.


'사랑을 잃고 우는구나. 청춘의 특권이니 실컷 울어라!'


속으로만 부러워하고 말았다.


내가 저렇게 온 마음으로 허전해하고 가슴 한 가운데가 뻥 뚫린 듯한 상실감으로 울던 때가 언제였던가 생각하니 삼십 년이라는 태산같은 세월이 먼저 눈 앞으로 다가온다.


으...우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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