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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Apr 03. 2019

조언하는 사람 vs 간섭하는 사람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자기 계발서는 ‘믿는 구석’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나를 대변해 주거나 보호해주는 테두리 없이 실전으로 투입되는 입장에서, 매 순간 조언이 간절해지는 경우가 늘어나기 마련이고 그에 대한 대답을 자기 계발서에서 얻을 수 있다고 철썩 같이 믿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소설이나 에세이, 시집은 책 구입 리스트에서 빠져버렸다. 자기 계발서를 읽을 시간마저 모자라는데, 감성을 건드리는 책은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사치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조언을 얻기 위해 항상 옆에 놓아두었던 자기 계발서가, 당시 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지금에서야 결론짓는 그 이유는 이렇다. 내 스토리가 아닌 그들의 스토리를 무조건 따라가려 했기 때문이다. 조언은 말 그대로 조언일 뿐, 나만의 시행착오는 반드시 필요하니 말이다. 자기 계발서에서 제시해주는 상황과 해결 방안은 작가에 가장 최적화된 것일 수밖에 없고, 평균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내가 그 평균에 속하는 상황에만 머물게 된다면야 가장 좋겠지만, 내 마음대로만 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최적화된 정답을 갖고 싶었다.


열린 조언은 정말이지 가장 짜증 나는 조언이었다. “나에게 정답을 달라고!”라며 외치고 싶었다. 5지선다에서 하나를 고르면 바로 깔끔한 정답이듯, 지금 당장 들은 대로 말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그런 조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과는 너에게 달렸다, 그럴 수도 있고 이럴 수도 있다, 한 번 잘 생각해봐 라는 이야기를 조언으로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무슨 조언이라고.


그런데 고맙게도 옆에서 정답을 정해주는 사람을 종종 만났다. 시원시원하게 내뱉는 그들의 명쾌함에 감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사함은 부담감으로 변해갔다. 조언이라는 탈을 쓴 간섭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그 사람과 많은 길을 걸어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의지했으면, “그건 틀렸어” “이렇게 하면 안 돼” “아직도 안 했어?”라는 말을 나에게 서슴없이 하는 것일까.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과 나의 선택을 간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불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어쩌면 ‘나만의 소신’이란 허상의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조언을 참고하는 것이 아닌, 조언에 매달리고 싶을 만큼 불안한 것일까.

왜 나만의 소신을 갖고 지키는 것이 어려울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노력하다 보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조언하는 사람도 간섭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만의 소신”이라는 고민은 아직 내 고민이 될 수도 없었다. 솔직히, “내 생각”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그리고 사회에서 원하는 기준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내 생각을 할 틈 조차 없는 시간을 보내왔던 것이다.


“과연 나는 나만의 생각을 갖고 있는지”라는 새로운 질문이 숙제로 주어졌다. 

그리고 어린 시절, 억지로 혹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힘들게 썼던 일기를 다시 써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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